김용창/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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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정부는 근본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자면 싸고 좋은 주택을 신속하고 충분하게 공급하는 것이 ‘바른길’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동탄 제2 새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660만평 크기에 공동주택 10만채, 단독주택 5000채를 지어서 인구 26만명 정도가 살게 할 계획이고, 2010년에 분양하여 2012년 입주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12일, 집값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건설하는 수도권 새도시 개발과정에서 풀리는 보상비가 2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여 부동산 시장 안정을 목적으로 한 새도시가 오히려 집값과 땅값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수도권 주택문제 해결 방책으로 새도시 건설은 견고한 법칙처럼 자리잡았고, 그것도 단 몇 해 만에 후딱 해치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수도권에는 새도시들이 포도송이처럼, 그것도 빼곡하게 들어차고 있다. 오래 전부터 평일인데도 오후만 되면 서울 방향의 경부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었다. 꽉 들어찬 자동차와 경부고속도로 양쪽의 아파트 가로수를 보노라면 우리나라 주택문제처럼 숨이 턱 막힌다. 소화불량에 걸린 수도권 경부축에 묵직한 암덩어리 하나를 또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여전히 또다른 새도시 건설 움직임은 계속되고, 수도권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새도시 건설 이외의 다른 방법은 생각할 겨를도 없으며,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삽시간에 공급해야 하고, 강남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구닥다리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레닌은 ‘자본주의 최고 발전 단계론’에서 급속히 성장하는 대도시 교외지역의 토지 투기는 금융자본한테 특히 수익성을 보장하는 경영이라고 설파한 적이 있다. 오늘날 수도권 새도시 건설과 관련해, 건설업계, 주택 담보대출 상품 판매 은행, 조직을 확대·유지하려는 정부와 정치계 등이 하나의 견고한 묶음으로 같은 논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새도시가 계속 늘어가면서 땅은 그저 큰돈을 벌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자본의 본성은 생산과 순환(회전)의 시간을 될수록 짧게 하는 것이기에 빨리 땅을 개발하여 주택이라는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빨리 내다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한다. 따라서 땅의 여러 가지 의미, 국토의 미학과 미래상 등등은 개별자본으로선 아무런 의미가 없고, 고려할 필요도 없다.
어느덧 온국민의 생각도 이런 자본 논리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정리가 없고, 속 깊은 정을 나눌 생활터전이 없어지고 있다. ‘고향땅’이라는 말을 구현할 수 있는 장소가 우리 세대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돈으로 비롯된 땅의 생기만이 팔팔하고, ‘새’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더불어 사람이 사는 장소로서 땅의 생기는 없어졌다.
육당 최남선은 <심춘순례>에서 “우리의 국토는 그대로 우리의 역사이며, 철학이며, 시이며, 정신입니다. 우리 마음의 그림자와 생활의 자취는 고스란히 똑똑히 이 국토 위에 박혀서 어떠한 풍우라도 마멸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하고 예찬하였다.
최남선의 국토 사랑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대에 맞게 땅이 변신하는 것이 맞더라도 지금처럼 인정과 생기가 없는 땅, 아파트 굴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을 횡횡하는 아파트 중심의 새도시 건설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인정과 생기가 흐르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 큰 종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을 되새길 때다.
김용창/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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