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시민편집인
시민편집인 칼럼
<아침이슬>은 하나의 투신이었다. 30년 전 단풍 곱던 학교 교정에서는 그랬다. “긴 밤 지새우고 …”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면 교정 전체로 노래가 번져 갔다. 불과 몇 분 만에 형사들이 들이닥쳐 병아리 낚아채듯 학생들을 채 갔다. 정학 맞고 제적되고 재판받고, 이 노래 때문에 청춘을 바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불러보면 가사가 추상적이고 멜로디도 늘어져 데모 노래로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하는 대목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묘지 아래로 지는 것도 아니고 떠오른다니. 엊그제 텔레비전에서 대학 2학년짜리들이 6·10 항쟁 20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거리에서 박종철·이한열 이야기를 하는데 지나는 젊은이 아무도 관심이 없다. ‘아침이슬’을 불러 시선을 끌자는 30대 선배의 제안에 그 학생들도 황당해했다. 주변 친구들이 운동권으로 치는 그 학생들에게도 이 노래는 감흥을 주지 못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바뀐 시대를 한탄할 필요는 없다. 한탄은 퇴행, 앞으로 나가는 데 걸림돌이다. 바로 ‘지금 여기’, 현실에서 출발할 일이다. <한겨레>가 ‘ESC’라는 섹션을 만들어 포스트모던해 보이는 얘깃거리들을 다루는 뜻을 그렇게 이해하고 싶다. 만화며 와인이며 연예인 …. 요즘 젊은이들이 선배들과 달리 정치나 ‘국가와 민족’에 무관심하고 소비지향적이며, 취업준비에만 몰두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되었으니 정치에 관심 갈 리 없다. 박정희처럼 10년, 20년 저 혼자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이도 없고, 눈 앞에서 친구들이 형사에게 끌려가는 일도 없다.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스타벅스에서 오천원짜리 커피 마시던 젊은이들도 돌 던지고 화염병 던지며 거리로 나설 게다. 또한 자본주의가 심화하고 세계화가 되었으니 일정 부분 풍요를 누리게 되는 한편, 경쟁은 더욱 극심해졌다. 젊은층이 돈 잘 쓰고 취업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온 나라가 배고프고 박정희의 탄압에 고통받던 시절의 ‘아침이슬’을 지금 젊은이들이 다시 부를 이유는 없다.
그 시대가 가진 모순은 그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가기 마련이다. 이명박 전 시장이 70~80년대의 모순을 풀려 애쓴 젊은이들을 무능한 이념세력이라 깎아내리는 것도 역사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올해 말 대통령 선거도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과 조건이 정확히 반영되는 것일 뿐이다. 어느 한편이 당선되었다 하여 그 반대편에서 역사의 퇴행이니 또다시 잃어버릴 몇 년을 운위하는 것 역시 딱한 일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취업이 되어도 자본주의의 부속품일 뿐 일의 결과와 보람으로부터 소외되고, 취업이 안 되면 당장 생계가 위협받게 되어 있다.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어 쌓이면 이들은 선배들처럼 저항할 것이다. 전에는 눈앞에 박정희가 보이고 쇠파이프 든 백골단이 보이니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으되,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이 스타벅스의 향기로 젊은이들 목을 조여 들어와 대응이 더디고 어렵다. <한겨레> 새(ESC) 섹션의 감성과 소재는 포스트모던하되 젊은이들의 삶을 소외시키고 갉아먹는 적, 자본의 본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치적 고민에서 경제적 고민을 넘어 실존적 고민이라는 사치를 누리게 될 날이 아마 오기는 올 게다.
김형태/시민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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