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이 내세우는 자유무역은 최소한 그 홍보만 보면 ‘우리 모두를 자유로이 한다’. 마치 독일의 나치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입구에 커다랗게 붙었던, ‘노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구호처럼 강렬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다. 자유무역이 말하는 자유란 두말할 것도 없이 돈벌이의 자유다. 그러나 바로 이 돈벌이의 자유 아래선 불행히도 우리 삶이 부자유스럽다. 돈 없으면 죽는다는 공포, 이게 그 토대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돈벌이의 자유를 넘어 역설적이게도 전쟁의 자유, 굶어 죽을 자유까지 강제한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전쟁이 대표적이며, 갈수록 느는 노숙 행렬과 생활고 비관 자살이 그렇다. 점증하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는 온 세상천지를 위협한다.
1994년 북미 자유무역협정(나프타) 발효와 함께 미국·캐나다·멕시코 사이에 하나의 자유시장이 생겼다. 그러나 이 자유시장은 농민과 노동자, 영세기업 등에겐 부자유를 주었다. 초국적기업과 금융자본은 자유를 만끽하나 대다수는 부자유를 느낀다. 이에 멕시코 농민들은 사파티스타란 저항군을 조직해 권력 장악이 아닌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결사 항쟁 중이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 두려움 없이 총을 들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협상 과정인 2006년 내내 풀뿌리의 저항을 불렀다. 농민과 노동자, 학생과 선생, 남녀노소가 광장으로 뛰쳐나와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를 외쳤다. 협정 타결 직전에 ‘서울의 택시운전사’ 허세욱씨가 총 대신 시너를 들고 외쳤다. “한-미 에프티에이 결사 반대!”였다. 허씨는 최후의 저항으로 자신의 몸에 불을 지폈고 마침내 생명을 잃었다. 협상 타결 직후엔 예천의 농민이 이웃사촌과 자유무역협정을 놓고 격론을 벌이다 공기총을 쏘았다. 착하디착한 이웃사촌이 죽었지만, 사실은 협정을 강행한 세력을 겨눈 것이다. 죽어 자유로워진 자들은 모두 에프티에이 때문에 자유로워지긴 했으나 더 이상 자유의 삶은 없다. 살아 있는 우리는 어떤가? 우리 몸은 자유로 걸어다니나 삶은 부자유 덩어리다.
최근엔 독성 물질인 디에틸렌글리콜이 들어간 중국산 치약이 미국에 들어가 모두 폐기 처분됐다. 지난해엔 파나마에서 그런 치약이 약 50명의 목숨을 ‘자유롭게’ 해버렸다. 독이 든 감기약에 이어 치약도 독투성이라니, 돈벌이의 자유가 귀한 생명을 얼마나 앗아갈 것인가? 더욱 암담한 것은 앞으로 갈수록 삶의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독일에선 러시아를 포함한 주요8국(G8)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조절한다. 자유무역 체제를 강요하고자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의 부시는 뜬금없이 ‘온실가스 감축 문제를 다시 협의하자’고 나섰다. 그간 유럽이 주도한 실질적 논의를 무위로 돌리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가 짙다. 그런 논의조차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행사장 주위엔 몇 겹씩 철통같은 방벽을 쳤다. 그렇게도 훌륭한 자유투자와 자유무역 체제라면 왜 전 세계적 저항 물결이 1999년 시애틀, 2001년 제노바, 2003년 칸쿤, 2005년 홍콩 등으로 이어지며, 주최 쪽은 왜 그런 저항을 두려워하나? 그리고 한국에서는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에이플러스(A※ ) 점수를 주겠다던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결과도 50일이나 지나서야 공개하나?
두려움을 조장하는 정치, 두려움에 갇힌 정치는 결코 아무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두려움을 정면으로 이겨내야 참된 자유와 희망을 얻는다.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비밀 유언이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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