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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홍세화칼럼] 유럽의 우파와 한국의 우파

등록 2007-05-22 17:16수정 2018-05-11 15:56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 기획위원
홍세화칼럼
프랑스 대선 결과에 대한 보도와 분석이 한국의 신문 지면에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물러갔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과 동갑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지구 반대편에서 같은 보수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정신적 동지로서 축하드린다”는 내용의 축하전문을 보냈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여성후보가 패배한 게 아니라 우파가 승리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국의 우파 정치인은 수구신문의 훌륭한 제자들이다. “프랑스도 우파 승리” “금년 12월 대선을 치를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등, 주류 신문들의 ‘제 논에 물대기’식 보도는 익히 알고 있는 터다. 그들이 신문이 아니라 정치집단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보도였으나, 우리 사회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라 그들의 논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프랑스 대선의 의미와 배경을 짚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홀로코스트의 반작용 때문에 프랑스 언론도 말할 수 없거나 말하지 않는, 프랑스 미디어를 실제로 장악한 유대인들이 사르코지 당선에 끼친 막대한 영향에 관해서나, 사르코지 대통령이 사회당 출신의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무장관에 기용한 일은 우파 정권의 좌파에 대한 열린 자세라기보다 같은 유대인이라는 점이 작용했으며 따라서 워싱턴-파리-예루살렘 축의 가능성과 함께 프랑스의 대 중동-이스라엘 정책에 변화가 예고된다는 점 등을 말하기는 차라리 쉽다. 그와 달리, 한국의 주류신문과 우파 정치인이 프랑스 우파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프랑스 우파의 승리의 의미를 작문할 때, 한국 민중의 시각으로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프랑스 민중의 처지나 시각으로 대응할 것인지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일은 만만치 않다. 프랑스 우파와 한국의 우파가 워낙 다르고, 교육, 의료, 양육, 실업, 연금, 노동, 주택 정책 등 민중의 생존권 차원에서 프랑스 민중과 한국 민중이 처한 현실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파는 공화국이 공공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조차 모르쇠로 일관한다. 우경화의 표시라며 한국 우파들이 기뻐한 영국 새 노동당의 ‘제3의 길’의 제3이 제1, 제2 다음에 온다는 점을 무시하며,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 또한 좌파 정책 이후의 것이란 점을 무시한다. 유럽의 우파는 좌파를 용인하고 좌파의 견제를 받아들인 우파인데, 한국에서 좌파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좌파 정권이라고 부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파에 의해 만들어진다.

생각하는 동물인 사람에게 불확실한 내일은 오늘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하겠노라고 사람들은 오늘을 저당 잡힌다. 열심히 산다고 하지만 행복보다는 때때로 공허함을 느끼는 까닭이다. 그런 삶은 나에게 성실할 수 없고 나에게 성실하지 못할 때 모든 타자에게 성실할 수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함께 더는 사회보장의 중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소득 중 조세와 사회보장 기여금의 비율로 표시되는 국민부담률은 북유럽 나라들이 50%에 가깝고 프랑스도 45%에 이르는데 한국은 20% 대에 머문다. 유럽의 우파는 한국의 우파 정치인을 정신적 동지로 여길 만큼 뻔뻔하지 않지만 뻔뻔하고 싶어도 민중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유럽의 우파 정권이 조세부담률을 내리겠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2~3%포인트에 머물 터인데, 이를 두고 “남들은 다 내리는데 우리만 올리나”라는 사설을 실으며 세금폭탄론을 전파하는 신문을 용납하지 않듯이.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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