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연속이다.” 프로이센의 장군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는 유고작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론의 이 고전적 명제를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정치란 다른 수단으로 하는 전쟁의 연속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다. 전쟁이야말로 정치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본 것인데, 푸코와 클라우제비츠의 중간쯤에서 정치와 전쟁의 관계를 대담하게 탐색한 사람이 독일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다. 슈미트에게 정치는 영원한 적대, 영원한 투쟁이었다. “정치적 적대는 모든 적대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 곧 최고의 적대다.” 그의 진술에는 을씨년스런 한기가 배어 있다. “정치인은 병사보다 더 깊이 투쟁에 관여한다. 병사는 단지 예외적으로만 싸울 뿐인데, 정치인은 평생을 싸우기 때문이다.” 병사의 싸움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음으로써 끝나지만, 정치인의 싸움은 한방에 끝나지 않는다. 정치의 장은 칼을 거두고 말로써 싸우자고 합의한 공간이다. 정치가 노리는 것은 상대방의 상징적 죽음이다. 경쟁자를 무력화시켜 영원히 매장해 버릴 때에야 정치적 싸움은 끝난다. 정치에서 죽음이 상징적 죽음이라는 사실에 정치의 사악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언제나 자신을 정의의 편으로 세우고 상대를 불의의 편으로 몰아붙여 상징적 목숨을 틀어쥐어야 한다. 정의를 독점하려는 싸움에 온갖 사술과 협잡과 기만이 동원된다. 슈미트는 정치가 사악한 이유를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찾는다. 정치는 사악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사악한 것이라 해도 그 사악성이라는 독을 견뎌낼 때에만 정치인은 비로소 정치가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위대한 정치는 그 독을 견딜 뿐만 아니라 독을 빨아들여 약으로 바꾸는 정신의 힘에서 태어난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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