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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주택 상품화’에서 ‘주거 복지’로 / 김용창

등록 2007-05-11 17:39수정 2007-05-11 17:56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주택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은 주로 비싼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의 처지를 대변하고, 정부의 정책을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이나 주택투자 방법을 알려주는 데 열중하는 경향이 있다. 주택가격의 등락에는 열불을 내지만 주택의 본래 기능인 거주의 안정성과 주거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특히나 현대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복지국가 성격을 탈피하고 이른바 근로국가(workfare)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주거빈곤 해소와 주거복지 향상이라는 주제는 그렇게 매력 있는 주제가 아닌 셈이다. 에스핑 안데르센은 현대의 복지국가를 사회민주주의, 조합주의 및 자유주의 복지체제로 구분한 바 있다.

이 가운데에서 자유주의 복지체제는 시장을 통한 자유로운 거래가 복지의 가장 큰 원천이라고 본다. 주로 시장의 거래를 통한 복지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복지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적 권리 주장은 매우 제한적인 성격을 갖고, 개인적 자유의 신장이 더 우선적인 목표가 된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같은 나라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하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삼으려고 애를 쓰는 틀이다. 그러나 사회적 권리에 최고의 우선권을 부여하거나 복지자원의 국가 공급을 중시하는 유럽의 국가들도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안데르센의 논의를 주거복지와 연계하면 가장 중요한 쟁점은 주택 탈상품화 논의, 즉 시장을 배제하고 국가가 최소한의 주거자원을 공급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만성적인 주거불안은 가장 기초적인 생활토대의 불안에 해당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주거기반 제공은 개인과 사회의 존재론적 안정성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위를 갖는다.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세, 월세, 사글세와 같이 내 집을 갖지 못한 가구는 총 638만8천가구이며, 이들의 거주기간을 보면 1년 미만 거주가구 비율이 가장 높아 주거의 안정성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글세의 경우 1년 미만의 비율이 39.9%이고, 2년 미만 거주비율이 58.3%에 이르고 있다. 늘 이사 걱정을 해야 하는 말 그대로 부평초 삶을 이어가는 불안정성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엌, 수도, 화장실, 목욕시설 등 주거시설을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가구는 127만2천가구가 있고, 주거극빈층이라고 할 수 있는 지하방이나 옥탑에 거주하는 가구는 63만8천가구, 판잣집·비닐집·움막·동굴 등에 거주하는 가구도 4만5천가구가 있다.

이럼에도 우리나라의 주거복지 수준은 전형적인 자유주의적 주거복지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해도 매우 낮다. 미국도 공공임대주택 재고가 매우 낮아 임대주택 거주자의 1% 정도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고, 34% 정도가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지만 임대료 보조가구 비율이 12.1%에 이르고 있다. 미국은 ‘주택도시개발법’에 근거하여 해당 지역 중간소득 50% 이하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주거비를 보조하는 주택 바우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나아가 시장기능을 중시하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를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세입자 보호를 명분으로 임대료 규제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주택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여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성을 제고해야 한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논리가 득세하는 세상이나, 자기 소유의 집에 살지는 못하더라도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불안하지 않은 거처에 살 수 있는 권리는 있는 것이며, 주거복지 제공은 국가의 마땅한 도리이다.


김용창/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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