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준 기자
유레카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는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겠노라.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업의 명예와 고귀한 전통을 지키겠노라.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히포크라테스 선서’(이하 선서)의 일부다. 선서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세기께 에로티아누스가 작성한 〈히포크라테스 전집〉의 목록에 나온다. 그러나 이 선서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고대인들은 선서를 대체로 히포크라테스나 그의 학파가 쓴 것으로 봤다.
히포크라테스는 수대에 걸친 명문 의사 집안 출신이다. 의학뿐아니라 일반교양·섭생법·철학·수사학까지 익혔다. 히포크라테스적 사유에 담긴 합리주의·자연주의·인본주의·생태주의 등은 당시 의학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이었다. 선서는 특정 가문에서만 전승되던 의학지식을 외부에 개방한 데 따른 것이란 해석도 있다.
선서는 이후 다양한 판본으로 나왔다. 중세 기독교인들이 선서 원전 서두에 나오는 아폴론·아스클레피오스 등 그리스 의술의 신들을 야훼와 예수로 대체한 필사본도 전해진다. 오늘날의 선서 역시 히포크라테스 원전이 아니라 세계의사협회의 1948년 ‘제네바 선언’이다. 의사들의 나치 범죄 참여를 반성하는 뜻에서 제정한 것으로, 지금까지 네 차례 개정됐다.(반덕진 〈히포크라테스 선서〉)
장동익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의료법 개정과 관련해 정치권에 수천만원의 로비자금을 썼다고 밝힌 뒤 파문이 커지고 있다. 고대 의학의 완성자라는 갈레노스는 ‘훌륭한 의사는 철학자이기도 하다’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이익집단이기에 앞서 인술(仁術)의 전도사여야 할 대한의협의 철학은 무엇인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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