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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블루스타킹 / 조일준

등록 2007-03-29 18:37

조일준 여론팀장
조일준 여론팀장
유레카
1750년대 런던. 부유한 문인이었던 몬터규 부인의 응접실에서 일군의 여성들이 문학좌담회를 시작했다. 이들은 당시 상류사회 여성들의 살롱문화였던 카드놀이나 잡담 대신 저명 문사들을 초청해 지적인 토론을 즐겼다. 여성들의 배움 자체가 금기시됐던 풍토에서 혁명적 변화였다.

모임에는 한 단골 초청객이 야회 격식에 걸맞은 검정 비단 예복이 없어 파란색 양말의 평상복 차림으로 참석하곤 했는데, 이런 차림이 모임의 유행이 됐다. 그러자 한 회원의 남편이 이 모임을 경멸하는 뜻으로 ‘블루스타킹 소사이어티’란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블루스타킹’은 ‘유식한 여자’들을 비하하는 말이 됐고,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는 여성 참정론자들을 빗댄 말로도 쓰였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직후 〈블루스타킹 저널〉이라는 잡지가 여성해방 쟁취에 힘을 쏟았다. 이 잡지에 글을 쓰는 여성들은 ‘신여성’이라 불렸다. 최근엔 미국 하버드대의 댄 킨들런 교수가 ‘알파걸’이란 신조어를 내놨다. 여러 면에서 남학생을 능가하는 엘리트 소녀 집단이자 ‘여성혁명의 딸들’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여풍’이 거세다. 올해 판검사 신규임용 190명 중 여성이 102명(53.7%)으로 절반을 넘었고, 지난해 새로 생긴 ‘괜찮은 일자리’ 30만 곳 중 18만 곳을 여성이 차지했다. 최근 직장인 1636명에게 ‘5년 뒤 한국 사회의 남녀 역학관계’를 물었더니 “여성 주도권이 더 강해질 것”이란 응답(43.6%)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전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유엔개발계획의 여성권한 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세계 53위에 머물렀다. 대졸여성 고용률은 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 중 꼴찌다. ‘블루스타킹’이 멋지고 당당한 ‘알파우먼’으로 진화할지, 잘난 여자를 비꼬는 ‘우울한’ 뜻에 머물지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남성권력의 존폐 여부에 달렸다.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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