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준 여론팀장
유레카
두 사람 모두 1920년대에 미국에서 태어나 마흔을 앞두고 피살됐다. 한 사람은 연설 도중, 또 한 사람은 연설 다음날 총에 맞았다. 둘 다 흑인이었고, 종교 지도자였으며, 인종차별 철폐에 삶을 바쳤다. 둘은 같은 것만큼이나 다른 점도 뚜렷했다.
마틴 루터(루서) 킹은 미국 남부에서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흑인과 백인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함께 사는 ‘통합’을 강조했다. 투쟁 방식은 정제된 언어와 비폭력 저항이었다. 맬컴 리틀은 북부의 할렘가 출신으로, 온갖 비참한 밑바닥 생활을 겪은 뒤 독실한 무슬림으로 거듭 났다. 그의 말은 직설적이고 명징했으며, 해방을 위한 대응폭력도 부정하지 않았다. 도덕적 위선보다 정직한 분리주의를 주창했고, 백인 주류사회로부터 ‘극단주의자’로 찍혔다.
킹이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1962년 7월 워싱턴)에서 사해동포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다면, 맬컴은 “백인이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여기던 것이 흑인에게는 긴세월 걸쳐온 ‘악몽’이었다”고 몸서리쳤다.(1962년 5월 뉴욕) 그러나 둘의 같음과 다름은 한뿌리에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으며, 인간에 대한 신념과 사랑이 확고했다.
킹은 앞의 연설에서 선언했다. “미국 건국자들은 모든 인간에게 삶과 자유, 행복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상속권을 보장하는 약속어음(헌법과 독립선언)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흑인들에겐 부도수표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정의의 은행’이 파산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이제 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할 때가 왔습니다.”
40여년 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인 바락 오바마는 첫 흑인 대통령을 꿈꾼다. 격세지감이다. 그러나 킹의 연설에서 ‘미국’을 ‘한국’으로, ‘흑인’을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이주 노동자’로 바꿔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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