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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칼럼] 대통합에 걸신 들린 사람들

등록 2007-02-09 16:47

성한용/선임기자
성한용/선임기자
성한용칼럼
지난 6일 열린우리당 의원 23명이 집단탈당을 선언한 직후, 우상호 대변인이 국회 기자회견실에 나타났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전날 폭음을 한 탓이다. 그는 목이 멘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2월14일 전당대회를 통해 대통합신당의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잠시 뒤 김한길·강봉균 의원이 국회 2층 김근태 의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어제까지의 동료들에게 고별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지는 가운데 몇 마디가 겨우 들렸다.

“대통합 합시다.”(김근태) “제 생각 잘 아시잖아요.”(김한길) “고민이 많았을 텐데 대의를 놓지 맙시다.”(김근태)

김 의장의 표정은 슬프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했다. 그는 요즘 “대통합 합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탈당한 의원들을 마주치면 인사말이 ‘대통합’이다. 정세균 당의장 후보도 지방을 돌며 “대통합신당을 추진하는 것이 당 최고의 정책”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가장 강경한 사수파인 신기남 의원조차 “신당에는 반대하지만, 대통합에는 찬성”이라고 한다.

김한길 의원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자유지대에 가서 서야 비로소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천정배 의원도 “국민 속으로 들어가 대통합의 밑거름이 되겠다”고 말했다. 남은 사람들이나, 떠난 사람들이나 ‘대통합’을 외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8일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연대와 연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거대야당과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국민이 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통합의 주체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대통합에는 찬성이다. 이른바 ‘범여권’에서 ‘대통합’은 진리요 하느님이다.

이렇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이 이런 분석을 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대선 구도는 ‘호남-진보’와 ‘영남-보수’의 대결이었다. 지역과 노선이 겹치면서 인구가 많은 영남이 유리해졌다. 호남·충청·강원·제주의 인구를 다 합쳐도 영남에 못미친다. 산술적으로 ‘호남-진보’엔 플러스 알파, ‘영남-보수’엔 마이너스 알파가 동시에 작용해야 ‘싸움’이 된다.


1992년 대선에서 영남엔 마이너스 알파(정주영)가 있었지만, 호남엔 플러스 알파가 없었다. 김대중 후보는 190만표를 졌다. 1997년엔 영남에 마이너스 알파(이인제), 호남에 플러스 알파(김대중-김종필 연합)가 있었다. 호남이 39만표 이겼다. 2002년에도 영남에 마이너스 알파(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 호남에 플러스 알파(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가 있었다. 호남의 노무현 후보가 57만표 이겼다. ‘호남-진보’ 쪽에서는 구조적으로, 운명적으로, 대통합을 외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탈당파와 사수파의 논쟁은 바로 이 ‘알파’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탈당파는 호남의 플러스 알파를, 사수파는 영남의 마이너스 알파를 강조한다. 물론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양쪽에는 ‘도망치는 비겁자’와 ‘기득권을 버리기 싫은 얌체’들도 숨어 있다.

아무튼 거칠게 보면 탈당파는 현실 인식에서, 사수파는 정치적 명분에서 조금씩 앞서 있다. 그래도 누가 누구를 욕할 자격은 없다. 정치에서 곧잘 현실은 명분이 되고, 명분은 현실이 된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논쟁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비판했다. 그런가?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발악’ ‘아우성’ ‘붕괴’라는 표현들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 몸짓에는 ‘소수세력’의 서글픔이 짙게 배어 있다

성한용/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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