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준 여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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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적 자급자족 경제 시대의 물물교환이 생산력 발달로 불편해지자, 물품교환의 매개물로 화폐가 등장했다. 기원전 16세기 조개껍데기가 최초의 화폐였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금·은 등 귀금속으로 만든 주화가 일반화하면서 다른 금속을 섞는 방법으로 금의 함량을 속이는 불량주화가 등장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화 테두리를 조금씩 갉아내 이익을 취하는 수법도 나왔다. 구리 등 상대적으로 값싼 금속으로 동전을 만들거나 주화의 테두리를 아예 톱니처럼 주조하게 된 것도 그 방지책이었다.
세계 최초의 지폐는 997년 중국 북송시대의 ‘교자’라는 예탁증서였고, 공식 지폐를 발행한 최초의 정부는 1170년 남송 시대 조정이다. 중세 중국에서는 위폐 제조를 막으려 전국의 위조범을 조폐기관에 특채했고, 12세기 영국의 헨리 1세는 위폐가 성행하자 조폐기관 직원들에 혐의를 두고 100여명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독일 나치정권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사회경제적 혼란을 노리고 파운드화를 대량으로 위조해 유통시켰다. 영국은 결국 파운드화의 도안을 바꿔야 했다.
우리나라 최대의 위폐사건은 ‘조선정판사 사건’이다. 조선정판사는 일제 말기까지 조선은행 백원권을 찍어내던 최신 인쇄소였다. 1945년 11월 조선공산당은 이 건물에 간판을 걸고 기관지 <해방일보>를 발간했다. 이듬해 5월 미국 군정당국은 정판사 직원들을 ‘위조지폐’ 제조 혐의로 검거하고 관련 인물들이 공산당 간부 및 당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좌익을 척결하고자 미군정이 조작한을 사건이란 주장도 있다.
그로부터 60년 뒤 미국은 위조달러 제조 및 돈세탁 혐의로 북한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를 동결했다. 지금 북-미 사이에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가 진행 중이다. 생산적인 6자 회담으로 가는 징검돌이 되길 바란다.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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