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나라살림가족살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민화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있다. 쌍둥이를 출산하고 아파 죽게 된 여인의 목숨을 거두러 내려왔다가, 남편도 얼마 전 죽고 쌍둥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여인의 간청에 그 영혼을 거두지 못해, 신의 명령을 어기게 되어 지상에 떨어진 천사 미하일의 이야기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도움으로 살아가면서 신이 내린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 미하일은 “내가 벌거벗은 채 인간 세상에 내려와 얼어 죽을 뻔했으나 살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의 일을 걱정하고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에 나를 불쌍히 여기고 보살피려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부모가 죽은 두 고아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어여쁘게 생각한 한 이웃 여자의 진실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하면서 다시 신에게 돌아갔다.
흔히 사람은 주위의 관심과 사랑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아이는 부모나 가족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성장할 수 있고, 개인은 조직이나 공동체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또 국민으로서의 개인의 삶도, 제도나 정책, 이를 집행하는 공직자들의 관심과 열정에 의한 보호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최근 35만명의 피해자, 5조원의 규모의 피해를 낸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다단계판매 사기사건(제이유그룹 사건)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피해자들 중 일부가 정부의 담당 공무원이 불법 사실을 은폐하거나 제대로 알리지 않아 큰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겠다고 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평범한 은퇴자이거나 중장년의 필부들이다.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그 누구도 이 정부로부터, 이 일을 맡아 온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필요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호는커녕 그들의 말을 믿고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다며 책임을 지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이 사건에는 권력과 명성, 사회적인 지명도를 팔아 그 대가로 이익을 얻었던 전·현직 공직자들도 많이 연관되어 있다. 공정위에는 다단계사업 규제의 틀로 만든 2개의 공제조합이 있었고, 많은 전직 공무원들이 이 조합의 임직원 자리를 얻기도 하였다. 이런 사기성 마케팅이 수년간 횡행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었던 것도 정부의 정책틀 안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그들 공직자들에게 꼭 있어야 했으나 없었던 것이 있다. 다단계 사기, 고리사채 피해 등 오랜 기간 서민 삶의 기반을 해쳐온 문제들, 그로 인한 금전적 피해에서부터 자살, 가정해체 등 시민들이 겪어 온 피해에 대한 연민과 애정 어린 관심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초기부터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겪게 될 시민들의 고통이 얼마나 될지, 이를 어떻게 예방하고 치유해야 할지 살피는 관심과 책임감이 없었다. 그래서 이 피해자들은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 과정에서 그 누구로부터, 특히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호와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고 항변하는 것이다.
가족이나 이웃, 지역사회와 공동체, 국가로부터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 개인, 최소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행복하다. 국민은 무엇으로 사는가? 공무원이 요즘 최고의 직업으로 인식되는 것이, 이 직업이 철밥통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보살피는 일을 하기 때문이기를 희망한다. 국민이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공직자의 일이며 공복의 책무이다.
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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