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시민편집인 칼럼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를 뽑았다. 이 말이 시대를 넘나들며 명쾌함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사람 사는 풍경은 시대가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한다”로 정의된 2006년은 말 그대로 답답하고 우울하기 그지없는 한 해였다. 말만 요란했을 뿐 신기루 개혁으로 추락한 것은 개혁 세력만이 아니다. 좌절과 냉소가 민주시민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한겨레〉 또한 냉소와 외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구조적 한계로 상존하는 경영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한겨레 처지로선 산 넘어 산인 격이다. 그래서인가, 지면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긴장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의 모습이다.
시민편집인으로서 1년 가까이 칼럼을 썼는데, 되돌아보면 왜 썼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사회부문과 경제부문의 균형을 강조했다. 그것이 정론지의 기본 요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면의 흐름은 거꾸로 갔고 이젠 사회부문과 경제부문의 균형을 위한 긴장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 동력들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고, 기업·기업가·부동산·상품·광고·협찬이 넘쳐난다. 사적 영역의 나눔 요구는 있지만, 공적 영역의 분배 요구는 잘 보이지 않고, 사람은 있지만 민중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여론면 바깥에서 일터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림자조차 찾기 어렵다.
가는 곳마다 듣는다. 한겨레가 옛날 같지 않다는 소리를. 한겨레가 변했다는 소리를. 심지어 ‘한사모’(한겨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자리에서 한 회원은 특정 신문을 내보이며 한겨레가 어떻게 된 거냐고 힐문했다. 그런 목소리를 나만 들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긴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겨레가 변했다’는 독자의 목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이보다 심각한 일은 없다.
한겨레는 냉혹한 시장 논리와 긴장하며 원칙을 고수해야 하는 태생적 고뇌를 안고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진 시민이 없는 한 시장의 요구와 한겨레의 지향이 배치됨으로써 생기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한겨레가 시민사회의 성숙과 왜곡된 시장의 억압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 긴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시장과 자본의 마름이 된다는 뜻이며, 그것은 곧 의미 없는 생존을 연장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과 시장의 마름이 되지 않겠다는 민중에게 생존의 한계선상에 서도록 강요한다.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늠름한 민중의 표상으로서 한겨레는 어려운 상황에서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사회 구성원들과 동지관계에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궁극적 지향과 목표를 늠름한 민중의 성숙한 시민사회에 둔다면 한겨레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고 목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한겨레는 정치권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없고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한다는 이유로 진보정당조차 가입을 불허하는 사규를 가진 한겨레가 정치권력이 제공하는 자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 모순이다. 이 점에 관해 한겨레 구성원들은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긴장이냐, 자발적 복종이냐의 갈림길은 자본과 시장 앞에서뿐만 아니라 이 물음 앞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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