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아침햇발
요즘 한나라당한테는 ‘부자 몸조심’이란 말이 제격이다. ‘종부세’ 완화 주장을 거둬들이더니 이른바 ‘반값 아파트’ 정책을 당론으로 정했다. 시장주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목청을 높인 게 엊그제인데, 웬일인지 그리 됐다. 꽉 막혔던 법안 처리에도 협조하고, 지지기반인 뉴라이트의 교과서를 ‘너무 나갔다’며 비판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최대 목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10%대, 한나라당은 40%에 이른다. 대선 주자들의 경쟁력도 압도적이다. 이대로 죽 대선까지 가면 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발언’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이른바 민심의 역풍이다. 더 몰아붙이면 국민들의 불신과 짜증이 언제 자신들한테 향할지 모를 일이다. 탄핵 때 호되게 당했던 아픈 경험도 있다. 대통령이 판을 깰 명분도 묽히고, 수권정당·서민정당으로서의 이미지 포장도 필요하다.
이 정도 감각이라면 당장의 역풍은 피할 수 있을 게다. 문제는 앞으로다. 한나라당은 4년 내내 정권 때리기로 일관했다. 일삼아 국회의 권능을 무시했고, 대통령의 인사권에 불복했다. 집권한다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사회적 연대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집권한다면 그 책임도 온전히 한나라당 몫이다.
여권의 최대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상황과 처지는 한나라당과 정반대다. 정계개편 주도권을 놓고 사즉생의 내부 전투 중이다. 문제는 온몸을 던져 변신을 꾀한다지만 이게 잘 통하지 않는 데 있다. 대통령이 탈당과 하야를 고심하고, 정치판을 흔들어 신당을 만든다는데도 별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여권은 국민들이 대통령과 과반수 여당을 만들어 줬지만 ‘다른 정치’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조바심 탓에 스스로의 정체성도 포기했다. 좌파 신자유주의니 실용주의니 하고 오락가락하더니 마침내 한나라당과 손잡겠다고 했다. ‘대연정 발언’ 이후 여권의 지지·우호세력은 급속히 등을 돌렸다.
더 큰 실패는 국정 운영과 개혁 노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는 점이다. 집권 초기의 신심과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필코 정권을 차지하겠다는 ‘한나라당스러운’ 오기와 패기도 별로 없다. 그저 개혁이라는 십수년 된 레퍼토리만 반복할 뿐이다. 이 상태라면 개혁신당이건 통합신당이건 ‘다시 한번 정권을 맡겨달라’는 뻔뻔한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여당 의원들이 총사퇴라도 했다면 개혁의 진정성만은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비례대표와 정당보조금이란 기득권조차 놓지 않으려 한다. 수십년을 집권한 일본 자민당 수준의 내부 개혁조차 힘든 현실에서 정권 재창출은 허망한 꿈이다.
엊그제 한 일간지가 유력한 대선 후보 6명한테 이념 성향을 물었다. 대답은 하나같이 ‘중도’에 몰렸다. 설문을 평가한 전문가는 “지나치게 표를 의식한 때문이며, 선택 기준이 필요한 유권자들한테는 실망스런 결과”라고 해석했다. 정작 중도가 아닌 60%의 유권자를 만족시킬 후보가 아무도 없는 역설적 상황도 꼬집었다.
모든 유권자를 만족시키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럴 수 있다는 이미지가 필요할 뿐이다. 너도나도 ‘중도’로 수렴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민심’에는 중도가 없다. 정치의 본령은 민심을 좇는 게 아니라 앞서 헤아리는 것이다. ‘재집권’과 ‘정권탈환’에 올인해 민심 뒤에 숨어버리는 정치 현실은 불행하다.
김회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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