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고래 수십마리가 한꺼번에 해안으로 몰려와 떼죽음하는 광경이 종종 벌어진다. 고래는 물밖으로 나오면 호흡에 문제가 생겨 질식하거나 자신의 몸무게에 내장 등이 짓눌려 죽는다. 이런 집단적인 ‘조난·좌초’(스트랜딩) 현상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먹이를 쫓거나 적한테 쫓기다 해류에 밀려온 것이라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오염이나 먹이 고갈 등 생태계의 환경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 선박이나 잠수함에서 나오는 소음과 초음파가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한다는 추정까지 다양하다.
늙거나 병들어 생존이 불가능할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행위는 동물 생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개체 차원에서는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집단 전체의 생존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더 높은 수준의 본능적 행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고래의 떼죽음은 우울증 같은 정신적 이유로 ‘집단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래의 상대적 지능이 높다는 점, 건강체나 새끼들도 자살 대열에 합류한다는 점, 바다로 돌려보내도 대부분 다시 해안으로 돌아온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인간과 가깝거나 유사한 동물 사회에선 ‘정신적 자살’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미나 새끼를 잃은 침팬지들 중에는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이다 죽는 경우가 많고, 충성심이 강한 개들은 주인이 바뀌면 식음을 전폐하고 옛 주인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갑작스런 정신적 충격과 상실감 때문일 터인데,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뜨면 시름시름 앓다 뒤를 따르는 인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엊그제 국내 한 시민단체가 자살 수단에 접근하기 어렵게 주변 환경을 바꾸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다리 난간을 높이고 건물 옥상을 잠그기만 해도 충동적 자살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포클레인으로 떠밀어 바다로 돌려보낸 고래들은 과연 삶의 의욕을 되찾았을까?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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