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선임기자
성한용칼럼
‘부시 카운트 다운 시계’가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퇴임까지 남은 날짜·시간·분·초를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의 사진과, “우리 나라의 악몽은 곧 끝날 것”이라는 글씨가 찍혀 있다. 누리집(www.nationalnightmare.com)을 열어보면 9.95달러짜리인 이 시계를 볼 수 있다. 아이디어에 재치가 번뜩인다.
한국에는 왜 ‘노무현 퇴임 시계’ 같은 것이 없을까? 보수세력의 상상력 빈곤 탓은 아닐까? 하긴 한국의 보수세력은 그냥 ‘말로 조지고, 글로 조지는’ 것이 ‘전공’이다. 40대 이상이 드나드는 밥집·술집에 가면 몇 해째 ‘노무현 죽이기’로 방마다 시끄럽다. 옹호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가세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이상한 사람’이 된다. 비판의 소재와 논리는 대개 신문에서 제공한다.
“시장 제압하겠다는 좌파적 오만부터 버려야”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가” “노 정부 3대 실패-정책·인사·시대인식” “노 정권 내부에 포진한 386 주사파”
종합 일간지 사설 제목들이다. 언론의 정부 비판은 정당한 권리다. 그러나 일부 신문은 좀 지나치다. 악담과 저주 수준이다. 한 신문은 ‘이 정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 정부’와 반대의 뜻으로 그런 용어를 찾아낸 것 같다. ‘너희 정부’라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금의 여론을 살피면 ‘정치인 노무현’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게 됐다. 보수세력의 비난은 본래 그랬다고 치자. 부동산 정책 실패 탓에 현정부에 한 줌 정도 미련을 갖고 있던 지지층도 고개를 돌리고 있다. 서민들의 불만은 정당하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해야 할까? 노 대통령이 망하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릴까? 노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넘게 남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자칫 ‘거버넌스의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위기의식은 진짜 위기를 부른다. ‘하야’를 요구하지 않으려면 앞뒤를 살펴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노 대통령을 공격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가 너무 심하게 다치면 나라가 망가진다. 부실 정권을 넘겨 받으면 한나라당 손해다. 사람을 두들겨 팰 때는 맷집도 생각해야 한다.
물론, 노 대통령도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열린우리당의 정덕구 의원이 최근에 책을 냈다.
“참여정부는 권위의 실종,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후진성, 상황 변화에 대한 반응 체계와 대응력 약화 등의 요인들이 겹치면서 갈등 조정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약한 정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참여정부는 구체제를 붕괴시키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체제가 생성될 것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제의 파괴 이후에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노력이 별도로 필요하다.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다음 대통령이 창조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고, 포장하고, 길을 여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대략 맞는 얘기다. 임기말 권력누수는 순리다. 이제 노 대통령은 ‘새로운 일’을 벌이면 안 된다. 차기 정권 창출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잘 한 일이 많았다. ‘하나회’를 숙청했고, 5·6공을 ‘청산’했다. 금융실명제를 시행했다. 그런데 임기 말에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려다 외환위기 ‘한방’을 맞았다.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그의 실패로 대한민국이 거덜났다. 확실히,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성한용/선임기자shy99@hani.co.kr
“참여정부는 권위의 실종,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후진성, 상황 변화에 대한 반응 체계와 대응력 약화 등의 요인들이 겹치면서 갈등 조정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약한 정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참여정부는 구체제를 붕괴시키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체제가 생성될 것으로 본 것 같다. 그러나 구체제의 파괴 이후에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노력이 별도로 필요하다.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다음 대통령이 창조적 리더십을 가질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고, 포장하고, 길을 여는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대략 맞는 얘기다. 임기말 권력누수는 순리다. 이제 노 대통령은 ‘새로운 일’을 벌이면 안 된다. 차기 정권 창출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잘 한 일이 많았다. ‘하나회’를 숙청했고, 5·6공을 ‘청산’했다. 금융실명제를 시행했다. 그런데 임기 말에 국정 장악력을 강화하려다 외환위기 ‘한방’을 맞았다.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그의 실패로 대한민국이 거덜났다. 확실히,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성한용/선임기자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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