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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규제냐, 규칙이냐? / 유종일

등록 2006-10-29 19:14

유종일
유종일
나라살림가족살림
경기가 하강국면인데다 북한 핵실험으로 불확실성이 증대하자 경기부양책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재정의 조기 집행을 검토한다고 하고, 재계는 출자총액 제한제도를 비롯한 각종 정부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한다. 기업 활동을 옭아매는 각종 규제를 그대로 놔둔 채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 얘기는 지겹게도 많이 들었다. 문민정부 이래 재계는 물론 정부도 규제 완화를 지고의 선인 양 내세우며 추진해 왔다. 그래서 국민들의 인식 가운데 ‘규제는 나쁜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누구든 규제를 당하는 처지에서는 이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는 공익적 목적에서 만드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규제 완화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함부로 규제를 완화했다가 이로 말미암아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소방안전에 관한 규제완화 이후 끔찍한 화재 참사가 빈발했던 것이나, 출자총액 제한제도 폐지 후에 순환출자에 의한 가공자본이 확대되어 기업의 소유-지배 괴리가 더욱 커진 것 등이 비근한 예다.

실상 우리가 규제라고 부르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경쟁의 규칙에 관한 것이다. 경기 규칙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채 축구 경기를 한다면 멋진 기량과 박진감 있는 승부는커녕 패싸움이 되고 말 것이다. 시장경쟁도 규칙이 잘 정비돼 있어야 효율적인 결과를 낳는다. 흔히 시장경제를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이 지배하는 정글과 같은 것으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이는 지극히 잘못된 인식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에는 합리적인 규칙이 있다. 약육강식이 아니라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득이 되는 ‘윈-윈 거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경제의 핵심은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이다.

물론 규제 중에는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것들도 있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규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리적 규제방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규제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며 틈만 나면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필자의 아들 녀석은 머리칼 규제에 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규제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떠들지 말라, 시험 칠 때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는 등 필요한 규칙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은 수용해야 한다.

기업가 정신의 요체는 끊임없는 혁신과 위험의 감수다. 혁신을 통해 기대수익이 높은 사업거리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어느 정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 이러한 건강한 기업가 정신의 창달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회복을 위해 가장 절실한 과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미명 아래 어떻게든 경쟁의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고치려 한다거나 근시안적으로 규칙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생산적이지 못할뿐더러 장기적으로는 참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생산성 향상은 제쳐놓고 임금 인상만 주장하거나 성장을 질식시킬 정도로 막대한 재분배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속 가능한 소득 증대가 아닌 지속 불가능한 분배 투쟁이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를 비롯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대한 요구도 분배 투쟁이기는 마찬가지다. 제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분배 투쟁은 나름대로 정당성을 지닌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전체 국민소득에서 피고용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기업이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확대되었는데, 대기업들이 자꾸 분배 투쟁을 하면 일반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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