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준 여론팀장
유레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는 잔잔하게 깔리는 주제곡 선율로 더욱 가슴을 적신다. 쇼스타코비치가 작곡한 왈츠 형식의 ‘재즈모음곡 2번’이다. 올해로 탄생 100돌을 맞은 쇼스타코비치는 ‘옛소련이 낳은 천재’ ‘현대의 모차르트’라는 평가를 받는다. 소련 공산당은 “소비에트 음악의 발전과 사회주의 휴머니즘 및 인터내셔널리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온 생애를 바쳤다”고 헌사했다.
그러나 스탈린 시절 쇼스타코비치는 이념의 잣대에 따라 ‘스탈린상 3회 수상’이라는 영예와 ‘타락한 서양 부르조아지’라는 비판의 양극단에 시달렸다. 자살 직전까지 내몰린 공개 비판과 숙청의 위협 속에서 비굴함을 강요받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회상록 <증언>에서 “나는 결코 내 음악을 통하여 권력에 아부하려 하지는 않았다. 또 그들과 ‘애정 관계’에 빠지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는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너무 많은 국민들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고 술회했다.
지난주 평양에서는 제25회 윤이상음악회가 열렸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 등 남쪽 연주자들도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북한 핵실험으로 막판에 방북을 포기했다. 서울의 윤이상평화재단은 폐막만찬 때 북쪽 당국자에게 북한의 대표적 오케스트라인 윤이상관현악단의 내년 서울 연주회를 제안해 긍적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한다. 내년은 윤이상 탄생 90돌이다. 그는 살아 생전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조국 땅을 끝내 밟아보지 못한 채 1995년 독일에서 삶을 마감했다. 예술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깊은 감동과 영감을 준다. 그런데 예술의 숭고함보다 이념과 대결의 장벽이 여전히 더 높은 곳이 있다. 한반도다. 안타깝고 분한 일이다.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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