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선임기자
아침햇발
할머니의 꿈은 “구치소 마당에서 죽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그는 서울구치소로 간다. 사형수를 면회하기 위해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그는 사형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하루 죽음과의 공포와 싸우는 사형수에게 그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신앙을 불어넣어 준다. 구치소 관계자들에게 ‘사형수의 어머니’로 불리는 김자선(82) 할머니는 자원봉사를 해 온 지 벌써 40여년째다. 김 할머니는 사형수뿐 아니라 사형수의 가족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사랑을 나눈다. 사형수 자녀에게 학비도 지원하고, 사형을 집행당한 사형수의 주검을 넘겨받아 묘지를 주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김 할머니는 한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이런 사형수 사랑과 보살핌은 남편 김홍섭(1922~65) 판사의 영향이 컸다. 생전에 김 판사는 자신이 사형 선고를 내린 사형수에게 ‘용서’를 빌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 판사는 매주 수요일 구치소의 사형수를 찾아가 “법이 있어 당신에게 사형을 선고했지만, 당신에게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형수의 후견인 노릇을 했다.
작가 공지영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을 바꾸는 구실도 했지만, ‘용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애국가를 불렀는데도, 무서워요!”라며 공포에 질린 채 “사랑합니다. 누나. 내 얼굴을 까먹으면 안 돼요”라고 절규하며 교수형을 당하는 윤수(강동원)의 마지막 모습은 굵은 눈물을 ‘주룩’ 흘리게 만든다.
이태 전 ‘희대의 연쇄 살인마’ 유영철에게 자신의 노모와 부인, 그리고 아들을 희생당한 고정원(64)씨는 얼마 전 사형수 유영철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유영철은 이 편지에서 “사회에 대한 앙갚음이 목적이었던 저의 바보 같은 분노에 희생양이 되었던 할머님, 사모님, 그리고 저와 동갑내기였던 아드님의 모습이 요즘 들어 부쩍 꿈속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감히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저의 미래는 없지만 이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 뉘우치겠습니다”라고 ‘용서’를 빈다.
사형수 유영철의 이런 모습은 가톨릭에 귀의한 고씨의 유영철에 대한 용서에서 비롯됐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고씨는 자살을 하러 한강대교에 갔다가 “이왕 죽는것, 유영철을 용서하고 죽자”고 마음을 먹었다. 유영철에 대한 탄원서까지 직접 쓰기도 했던 고씨는 영치금까지 넣어주는 ‘상상하기 어려운 용서’를 베풀었고, 유영철은 그런 고씨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가을 ‘희망 여행’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살인’이라는 행위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유족과 목숨을 빼앗은 사형수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차로 이동하며, 함께 침식하며, 자신들의 체험을 이야기한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4천명의 회원을 둔 ‘화해를 위한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회’라는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이 행사는 1993년부터 사형제도를 둔 주를 하나씩 골라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벌인다. 이 시민단체는 1985년 자신의 할머니를, 단돈 10달러를 달라며 칼로 찔러 죽이고 사형을 선고받은 당시 15살 소녀(폴라 쿠퍼)를 용서한 빌 펠케가 만들었다. 빌의 노력으로 폴라는 사형에서 60년으로 감형됐다.
고씨의 두 딸은 ‘철천지 원수’ 유영철을 용서한 아버지를 원망한다고 한다. ‘용서’는 정말 힘든 일이다. 사형제 폐지 운동을 하고 있는 이영우 신부는 “사형보다 무서운 형벌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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