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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플리바기닝 / 김회승

등록 2006-10-01 18:08

김회승 논설위원
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110억달러의 회계부정 사건을 일으킨 월드컴의 최고경영자 버나드 에버스는 지난해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 회사의 회계부정을 사실상 설계하고 주도한 재무담당 임원 스콧 설리번은 불과 5년형을 받는 데 그쳤다. 유죄를 인정하고 다른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적극 증언한 ‘유죄협상거래’(플리바기닝) 덕분이었다. 무려 165년이던 검찰 구형량이 증언 이후 25년으로 줄었고 법원 선고에서 다시 5분의 1로 감형된 것이다.

영미식 사법체계에서 발달한 유죄협상제는 유죄 인정을 조건으로 형량을 줄여주는 것이다. 설리번처럼 제3자의 중대 범죄를 증언하고 자신의 처벌을 경감받는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 비슷한 취지다.

이 제도를 도입한 건 인력과 비용 문제 때문이다. 결과가 뻔한 대다수 형사사건의 수사와 재판의 수고를 덜자는 것이다. 범죄를 입증할 완벽한 증거를 찾기 어렵운 현실적 고려이기도 하다. 현금으로만 이뤄지는 뇌물 수수, 몸통을 드러내기 힘든 부패·조직 범죄 수사에서 이 제도가 적극 활용되는 이유다. 그러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 범죄자 처벌을 거래하는 게 과연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대륙식 사법체계인 우리는 법 규정은 없지만 검찰의 오랜 수사 관행으로 굳어져왔다. 얼마 전만 해도 한 공기업 사장이 법정에서 ‘검찰이 뇌물 혐의를 인정하면 구속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여겼다’고 폭로해 논란이 됐다. 최근 ‘공판 중심주의’를 둘러싸고 법원과의 갈등이 커지자 검찰 주변에서 제도화 목소리가 솔솔 흘러나온다. 때맞춰 검찰 고위 간부는 “조사를 하다 보면 사실 실제 그럴 일이 생긴다”며 음성적인 관행을 공공연히 시인했다. 독점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마당에 사실상의 재판권까지 행사한다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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