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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탱크 / 조일준

등록 2006-09-14 21:58

조일준 여론팀장
조일준 여론팀장
유레카
꼭 90년 전인 1916년 9월15일 아침. 프랑스 솜므 전선에서 지루한 참호전을 벌이던 독일군은 생전 처음 보는 괴물을 앞세우고 진격해 오는 영국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1차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의 후원으로 스윈튼 중령이 개발한 세계 최초 철갑전차 ‘마크Ⅰ’이다. 포탑이 없어 찌그러진 성냥갑 같은 몸통 양옆에 거대한 캐터필러가 붙은 우스꽝스러운 모양이었다. 57㎜ 포 2문에 기관총 4정, 최고 속도도 시속 6㎞ 정도지만, 현대 지상전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주역이었다. 개발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전선 배치도 물탱크를 운반하는 것으로 위장했다. 장갑전차에 ‘탱크’라는 명칭이 붙은 유래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는 다음날 이렇게 전했다. “적군은 탱크와 같은 물건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고, 공포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요란한 포격 소리에 더해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독일군은 마치 사냥감 토끼 같았다. 탱크는 참호를 가로질러 거침없이 돌진하며 계속 좌우를 쏘아댔다.”

전차의 위력을 실감한 독일은 2차대전에서는 전차·장갑차 등 기계화 부대를 앞세운 ‘전격전’ 전술로 초반 전세를 장악했다. 이후로도 전차는 개량을 거듭하며 진화해 왔다. 한국군 최초의 전차는 한국전 당시 미군에게 공여받은 M24 차피 경전차였는데, 북한군의 최신 소련제 T-34와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첫 국산전차 K-1(일명 88전차)을 개발한 데 이어, 수년 안에 차세대 주력전차 K-2가 실전배치될 예정이다.

국방부와 경찰은 엊그제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터의 빈집을 강제철거하는 전격작전을 수행했다. 물론 탱크가 동원된 건 아니다. 그러나 평생을 일궈온 삶의 터전에 미군기지를 옮겨오려고 정든 집들을 박살내는 중장비의 굉음이 그곳 주민들에게 탱크 진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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