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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미국 기업연금제도의 위기와 개혁 / 전창환

등록 2006-08-30 19:20수정 2006-08-30 19:28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나라살림 가족살림
미국에서는 대륙 유럽형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기업연금 제도가 비교적 일찍부터 제도화되어 발전해 왔다. 1950~60년대 미국 경제의 황금기에는 민간기업의 높은 생산성으로 고임금이 가능하였고 확정 급여형의 기업연금도 별다른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60년대 말 생산성 상승이 둔화하고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기업의 경영실적과 기업연금 재정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즉 기업연금의 적립금이 연금급여에 크게 못미쳐 연금 스폰서인 기업 자체가 도산하여 노동자들이 아예 연금 수급권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대처하고자 마련한 법안이 바로 70년대 종업원퇴직 소득보장법이었다. 이 법은 노동자들의 연금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 연금 수탁자들에게 엄격한 수탁자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기업연금이 파산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일정액의 연금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연금급여 보증공사를 설립하도록 했다.

이 법이 제정된 지 30여년이 지난 현재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의 경우, 2000년대 초 주식거품 붕괴 이후 주식시장에서의 운용실적 악화로 심각한 적립금 부족 사태를 맞고 있다. 지난 7월 현재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의 지급 부족액이 적게는 3130억달러에서 많게는 45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동차·철강·화학·항공 업계 등에서 연금 적립금 부족 상태의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기업연금의 폐지와 동결사태가 급증했다. 이렇게 되자 연금급여 보증공사의 재정상태도 급속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 연금급여 보증공사는 97억달러의 순자산을 기록했지만 2002년부터 순부채가 발생한 이래 최근 228억달러의 순부채를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업연금 제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동부가 중심이 되어 기업연금 개혁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상하 양원을 통과했고 지난 1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최종 서명했다.

이 법안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에 관한 적립률을 개정했다. 즉 기존에 90%였던 연금부채 대비 기금 적립금 비율을 향후 7년 안에 100%로 상향조정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적립 비율이 높은 기업에는 세제혜택을 부여함과 동시에 부도 위험이 높은 기업에는 좀더 엄격한 적립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둘째, 기업연금의 자산과 부채를 평가하는 방법을 시장의 변동을 최대한 신속하게 반영하도록 개정했다. 끝으로 연금급여 보증공사에 대한 기업연금 보험료를 기존의 가입자 1명당 연간 19달러에서 30달러로 올리기로 했다.

이런 제도 변화로 연금 스폰서인 기업의 부담 증가,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의 자산운용 방식의 변화 등 여러 가지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하지만 향후 예상되는 결정적인 변화는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을 폐지하거나 이를 확정 기여형 연금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연금급여가 주식시장의 운용실적과 그 변동성에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연금 수급권은 더 한층 불안해질 것이다.

기업연금은 본질상 노동자들의 이연임금(지급이 미뤄진 임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단일 사용자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에서는 기업연금의 핵심 이해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노동자들이 연금설계 및 연금자산 운용과 관련하여 아무런 발언권을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미국의 확정 급여형 기업연금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지는 종업원 퇴직연금(기업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1년도 채 안 된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전창환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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