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우 선임기자
아침햇발
“아니, 선수들 바지가 뭐 저래.”
1983년 4월1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는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렸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데 이어, 프로축구와 민속씨름을 잇달아 탄생시키며 이른바 ‘3S 정책’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런 프로스포츠의 탄생에는 방송사가 ‘총대’를 메고 중계는 물론 실질적인 주도역할을 하곤 했다.
평지의 모래판에서 하던 씨름이 선수들의 부상 위험에도 불구하고 1m 가량 높인 씨름판에서 했던 이유도 텔레비전 중계 카메라 높이와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 출전 선수들을 카메라를 통해 보던 방송국 한 간부가 선수들의 짙은 색깔의 면 반바지에 제동을 걸었다. 그 간부는 화급하게 “근처 스포츠용품점에 가서 화려한 색깔의 수영복을 사 와”라고 지시했다.
결국 당장 그날부터 씨름선수들은 몸에 짝 달라붙는 수영복을 입고 샅바를 묶어야 했다. 다음 대회부터는 화면 노출이 자주 되는 엉덩이 쪽에 소속사의 이름도 큼직하게 새겨졌다. 한민족의 전통을 잇는다며 만들어진 민속씨름의 경기복은 이렇게 전통에 대한 고증도 없이, 단지 텔레비전 ‘화면발’을 위해 원색의 수영복으로 결정된 셈이다.
일본 스모의 선수들은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된 채 중요 부분만 가리는 ‘마와시’를 두른다.
풀 먹인 비단을 손바닥만한 폭으로 여러차례 겹쳐 접어, 허리에 여섯 번 두르고 아래쪽 중요부분에 한 번 휘감아 고정시키는 마와시는 절대 빨지 않는 전통이 있다. 경기 뒤 그늘에서 말리고, 만약 이것이 더럽다고 빨면 “부모가 돌아가셨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스모 선수들은 전통에 집착한다.
영화 <쉘 위 댄스>를 제작한 일본의 스오 마사유키 감독이 만든 <으랏차차 스모부>라는 영화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전통을 중시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3부 리그 스모 대학팀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스모팀에 합류한 영국 유학생은 “스모는 나체쇼다. 엉덩이를 내보일 수 없다”며 반바지를 입고 마와시를 둘렀으나, 대회본부는 그의 출전을 금지시킨다. 팀이 위기에 몰리자 결국 이 유학생은 입고 있던 반바지를 찢어 버리고, 엉덩이를 노출시킨 채 경기에 출전해 팀의 승리에 도움을 준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한국의 100대 상징물의 전통 스포츠로 태권도, 활쏘기와 함께 씨름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미 민속씨름은 그 명맥조차 이어가기 힘든 지경이다. ‘천하장사’의 대를 이어가던 최홍만에 이어 이태현마저 일본에서 만든 신흥 스포츠인 종합격투기 종목으로 옮겨가며 씨름은 더욱 사그라들고 있다. 고등학교 씨름단은 5년 전에 비해 팀수가 20% 가량 줄어들었고, 소년체전에서는 아예 씨름을 제외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국영 방송는 일년에 6번 홀수 달마다 보름간씩 하는 스모대회(바쇼)를 대회기간 내내 매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공중파로 생중계한다. 심지어 라디오로 전 경기를 중계한다. 오래된 깨지지 않는 전통이다.
지난해부터 시청률이 낮다는 이유로 민속씨름 중계를 중단한 는 ‘원조 천하장사’ 이만기가 한창 날리던 시절,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민속씨름 생중계를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9시 뉴스> 시작을 늦춰가며 하던 시절이 있었다.
‘바다이야기’와 ‘황금성’ 같은 사행성 오락 프로그램의 판매를 허용하며 전국을 ‘도박장’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던 문화관광부는 소중한 민속자산인 민속씨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을 했을까?
“지난 몇년간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어요. 그냥 방치했어요.” 씨름 관계자의 한탄이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영화 <쉘 위 댄스>를 제작한 일본의 스오 마사유키 감독이 만든 <으랏차차 스모부>라는 영화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전통을 중시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3부 리그 스모 대학팀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스모팀에 합류한 영국 유학생은 “스모는 나체쇼다. 엉덩이를 내보일 수 없다”며 반바지를 입고 마와시를 둘렀으나, 대회본부는 그의 출전을 금지시킨다. 팀이 위기에 몰리자 결국 이 유학생은 입고 있던 반바지를 찢어 버리고, 엉덩이를 노출시킨 채 경기에 출전해 팀의 승리에 도움을 준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한국의 100대 상징물의 전통 스포츠로 태권도, 활쏘기와 함께 씨름을 선정했다. 그러나 이미 민속씨름은 그 명맥조차 이어가기 힘든 지경이다. ‘천하장사’의 대를 이어가던 최홍만에 이어 이태현마저 일본에서 만든 신흥 스포츠인 종합격투기 종목으로 옮겨가며 씨름은 더욱 사그라들고 있다. 고등학교 씨름단은 5년 전에 비해 팀수가 20% 가량 줄어들었고, 소년체전에서는 아예 씨름을 제외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본의 국영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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