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아침햇발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언론사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시정 설명에 나서고 있다. 취임 한달 보름여 만이다. 대통령도 갖지 못한 언론과의 밀월기간을 적잖이 누렸으니 ‘왜 서울시장은 안 보이냐’는 세설에 신경이 쓰일 법한 시기다.
그가 내민 첫 카드는 용산 미군기지와 공공기관 이전 예정 터 문제다. 둘 다 서울시 관할이지만 땅임자는 국가다. 서울시는 ‘용산 민족·역사공원 특별법’에 정부가 자의적으로 개발 면적을 늘릴 수 있는 독소조항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혁신도시 특별법’ 역시 정부가 서울시의 도시관리계획 기조를 흔들 소지가 있다고 우려한다. 땅주인이 일방적으로 재산권을 휘두르니 어쩔 수 없이 여론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약자의 항변처럼 들리지만 사실 ‘중앙정부와의 일전’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용산공원 문제는 명분도 여론도 그한테는 우호적이다. 국가적인 사업을 대결 방식으로 몰아간다는 비판 목소리가 있지만, ‘푸른 서울’을 갈망하는 대의와 여론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다. 기지 이전 비용 때문에 시민들의 녹지공간이 줄어들 것이란 호소가 훨씬 설득력 있다. 막개발과 건설족들의 잔치를 우려하는 시민단체들도 현재로선 우군이다. 시 공무원들이야 자신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싸움인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오 시장은 최근 언론 간담회에서 “지방선거에서 야당 인사들이 대거 당선되자 정부가 작심하고 자기 재량을 최대한 늘리고 단체장 권한을 압박하는 법안을 밀어붙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일 처리를 보면, ‘서울시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정부 약속은 그리 진실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가사업이니 중앙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밀어붙일 배짱도 두둑한 것 같지 않다. 남은 임기에는 국정 관리만 하겠다는 힘빠진 참여정부와의 싸움이 불리하다고 판단할 이유가 없다. ‘정치인 오세훈’이다.
그의 또다른 모습은 어쩔 수 없는 ‘이명박 콤플렉스’다. 그가 추진하는 한강 개발 프로젝트는 점점 더 ‘이명박류’를 닮아가는 모양새다. 이 전 시장이 추진했던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는 콘셉트만 바꿔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나아가 뚝섬과 상암 지역에도 서울을 상징하는 이정표를 더 세우겠다고 한다. 뉴타운 사업은 “투기가 걱정되지만 삶의 질을 높인다”고 정리했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집어넣겠다지만, ‘무언가 짓고 만드는’ 이명박류와 뭐가 다른지 감이 잘 잡히질 않는다.
오 시장의 최대 공약은 ‘서울 공기를 도쿄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취임과 동시에 내놓은 경유차 제한 정책은 새로울 것도 없고 비현실적이라는 협공을 당했다. 그는 2~3년 뒤 얘기라며 슬그머니 물러섰다. 대표적인 환경운동가를 영입했다가, 또 지방선거 몰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가, ‘누구 덕에 시장이 됐냐’는 보수언론의 충고도 들어야 했다.
그는 초조해 보였다. 간담회에서 “주변에서 전임 시장처럼 확실한 아이템 2~3개에 집중해 업적을 쌓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민의 행복”을 거듭 강조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행복지수를 높일 행정 시스템에 힘을 쏟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자리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과는 불투명하고 생색도 나지 않는 일은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게다. 이미지만 있고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도, 전 시장의 그림자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해답은 서툰 조급증이 아니라 민심과 초심을 성찰하는 데 있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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