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내년 대선에서 박근혜만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요즘 꽤 있다. ‘암흑의 1970년대’를 기억하는 이들이다. 여권 후보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일종의 체념 섞인 희망이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시대의 복권으로 본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내가 싫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될 확률은 현시점에서 대략 3분의 1이다. 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고건 전 총리와 함께 ‘3강’을 이루고 있다. 최근 〈한겨레〉 조사는 이명박 21.6%, 박근혜 18.1%, 고건 13.5%였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첫째, 그는 성실하다. 2004년 7월부터 2년 동안 특유의 진지함으로 한나라당을 지지율 42%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둘째, 미모의 중년 여성이다. 그는 악수를 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셋째, 비극적 삶을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에 맞아 숨졌고, 자신은 최근 얼굴에 칼을 맞았다.
세번째 이유가 특히 중요하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이 ‘박근혜의 힘’을 분석해 전해주었다. “유권자가 미안해하는 정치인이 성공한다. 97년에 어떤 사람들은 김대중을 불쌍해서 찍었다. 그 표가 당락을 갈랐다. 2002년에 호남 사람들은 그동안 노무현에게 진 빚을 갚고자 그를 선택했다. 지금 유권자들이 미안해하는 정치인이 딱 한 사람 있다. 박근혜다. 그를 보면 왠지 불쌍하고 눈물이 난다고 한다.” 정치에서 유권자들의 감성은 지지로 이어진다.
박근혜 의원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 데 성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의 자산만 넘겨받고, 부채는 탕감을 받았다. 박정희와 육영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박근혜를 좋아한다. 그러나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판하면 단박에 ‘연좌제 발상’이라는 반론이 돌아온다. 예쁜 여성의 얼굴에서 독재를 떠올리기란 어렵다. 그를 비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가 논리적 영역의 약점들을 감성적 영역의 방패로 감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8월15일 국립현충원에서 ‘육영수 여사 제32 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그곳에서는 30년을 뛰어넘어 두 시대가 공존했다. 박정희 시절 정권의 ‘은혜’를 입고 출세했던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영부인을 암살한 주범은 김일성 부자인데 좌파 정권들이 그들과 화해를 했다.” “영부인이 돌아가신 날부터 나는 국민교육헌장을 삶의 신조로 삼았다.” 추도사를 한 사람들은 마구 ‘오버’했다. 그들은 아직도 70년대에 살고 있었다. 유령들의 집회 같았다.
흰옷을 입은 박근혜 의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추모객 1천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그의 미소는 눈부실 정도로 화사했다. ‘밝은 현재’와 ‘어두운 과거’가 극적인 대비를 이루었다.
박근혜 의원이 98년에 펴낸 일기 모음집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라는 책이 있다. 아버지가 타계한 지 얼마 안 된 80년 1월14일에 그는 이렇게 썼다. “정말 잘 산다는 것은 만사가 자기 뜻대로 되는 인생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와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서서 환경에 적응하고 더 나아가 그 환경을 이용,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더 발전하는 삶일 것이다.”
89년 12월1일의 일기 한 토막도 눈에 띈다. “나의 생은 한마디로 투쟁이다. 가장 원하지 않은 생의 방식.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섬뜩하다. 박근혜 의원은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89년 12월1일의 일기 한 토막도 눈에 띈다. “나의 생은 한마디로 투쟁이다. 가장 원하지 않은 생의 방식.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섬뜩하다. 박근혜 의원은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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