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지방선거에 참패하고서도 인사 파동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현 집권세력의 실패는 더 계속될 것 같다. 정부 스스로 변화하기를 바라지만, 현 정부에 기대를 접은 이들도, 뼈아픈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이제 전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집권세력이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평상의 관리시스템이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 특히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 기초 위에서 정부 정책의 분열증과 편집증을 ‘조정’해야 한다.
첫째, 대외개방은 점진적으로 행해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높은 수준으로 급하게 추진하면 안 된다. 대외개방이 국내개혁과 연계 없이 진행되면 원하는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만 쏟아낸다. 세계무역기구의 다자 협상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국내 부담은 훨씬 더 커졌다. 그러므로 이행기간과 포괄범위를 조정하여 국내개혁이 개방 속도를 따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성을 갖춘 정부 각 부문이 협상조건 작성에 적극 참여하면서 이를 전제로 해 발전의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간 국내 산업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농림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를 협상에 더 전진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내 제도를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교육부, 문화관광부, 환경부, 노동부의 발언권도 높여야 한다. 지켜내야 할 마지노선을 철저히 점검하는 한편으로, 한-중, 한-일 자유무역협정의 모멘텀을 연구·개발하고, 대외개방의 전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남북관계는 다자주의의 틀에서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하는 원칙에서 관리해야 한다. 통일과 관련해서는 급진적 통일, 점진적 통일, 비통일의 세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는 지금까지 진보-보수 세력의 중요한 구분선이었으나, 이 구분선이 유동화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일관성과 인내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경 변화에 따라 일정 기간 남북관계가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은 남북 경제통합의 실험장, 중소기업 발전의 거점으로서 전략적인 중요성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남북관계 침체기에는 개성공단 사업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이에 대해서는 정파를 넘어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남북관계에서도 넓고 종합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주의와 남북 양자관계 진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한-일 관계가 지나치게 악화하면 한-미 관계로의 편중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대일·대중 관계에서 확성기 외교보다는 경제관계 비중이 늘어나야 한다.
셋째, 국내적으로는 거시정책과 미시정책의 조화가 중요하다. 새로운 성장 방식을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인위적 경기부양은 없다’는 것이 원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미시적 규제는 일관되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재벌정책·부동산정책·교육정책의 원칙을 세워 일관성을 유지하되, 갑자기 튀어오르는 과잉규제로 저항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경기변동 예측의 정확성을 높여 탄력적인 거시정책을 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방에 개발이권을 분배하는 ‘매수’ 전략의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지금은 몇 개 지역에서라도 중앙과 협력하여 산업과 복지시스템이 동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 과제다. 이제, ‘조정’이란 적막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꾸준히, ‘중도’의 길을 가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지방에 개발이권을 분배하는 ‘매수’ 전략의 경제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지금은 몇 개 지역에서라도 중앙과 협력하여 산업과 복지시스템이 동시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선행 과제다. 이제, ‘조정’이란 적막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꾸준히, ‘중도’의 길을 가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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