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조선 중기의 급진 개혁파 조광조는 중종의 부름을 받고 대사헌 자리에 올랐다. 지금으로 치면 사정기관의 총사령관이다. 중종반정의 공신 세력과 훈구파들이 득세한 시절이었다. 왕권 강화의 특명을 받은 그가 가장 먼저 바꾼 게 인사제도다. 과거제도 대신 일종의 천거제도인 현량과를 만들어 관료들을 등용했다. 기존 직업 관료들의 부패를 명분으로 삼았지만, 속내는 사림파의 세력을 확대해 개혁 우군을 규합하자는 취지였다.
권력자나 집권세력의 제 사람 심기는 동서고금의 정치 관행이다.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승자가 전리품을 독식’하는 엽관제(spoil system)로 정착했다. 국민이 선출한 정치세력이 공직을 맡아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과 책임정치 원리에 가장 부합한다는 철학이다. 미국은 남북전쟁 직후 한때 절반이 넘는 공직이 선거 결과에 따라 뒤바뀌었다. 의회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엽관제와 비슷한 정실인사의 전통이 뿌리내렸다.
그러나 행정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중요해지면서 선출된 자보다 능력있는 자가 필요해졌다. 엽관제의 민주성과 책임성 원리도 퇴색했다. 관료 대신 권력이 부패의 온상이 되고, 국민의 공복이 아닌 집권자의 충견으로 전락한 이들이 많았던 탓이다. 엽관주의나 정실주의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의 공무원 인사제도는 대부분 실적주의(메리트 시스템)에 따른 독립적인 직업 공무원제도를 따른다. 하지만 여전히 엽관주의 전통은 강하게 남아 있다. 미국의 존 케네디 대통령은 선거에서 승리한 뒤 “나는 유권자밖에 모르는데 수천명이나 되는 공무원 인사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며 행복한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 청와대 말처럼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다. 문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승자의 독식’을 우려한다는 사실이다.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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