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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조순형과 민심읽기 / 김이택

등록 2006-07-28 19:22수정 2006-07-30 16:45

김이택 국내 편집장
김이택 국내 편집장
편집국에서
조순형 의원이 돌아왔다. 그가 이끌던 민주당이 탄핵 역풍으로 총선에서 참패한 지 2년3개월 만이다. 스스로 “임금에게 직언하다 유배됐던 선비가 사면돼 돌아온 것”에 비유했다.

조 의원은 정치권에서 매우 독특한 사람이다. 한 기자는 ‘이상한 정치인, 섬 같은 국회의원 - 원칙 속에 스스로를 유배한 자’라고 썼다. 술과 골프를 아니 하는 것도 그렇지만 11대부터 정치를 해오면서도 줄서기, 계보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13대 총선 때는 재야 출신 중심의 한겨레 민주당에 합류했다가 낙선해 6선 경력에서 유일하게 공백기로 남아 있다.

대신 그의 무기는 의정 활동이었다. 장외정치가 중심이던 시절 그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4대 국회 이후 정치판에서 원내 활동 비중이 커지면서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한겨레〉는 14~15대 국회 시절 훌륭한 의정활동을 편 의원들을 상임위마다 1명꼴로 ‘오늘의 선량’으로 엄선해 매년 10여명을 소개했다. 조 의원은 93년과 94년, 96년 세차례나 선정됐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어느 해엔가 조 의원 쪽에서 식사나 하자는 전화가 왔다. 그가 기자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우리 일행에게 책 한권씩을 내놓았고 거기엔 부인인 연극배우 김금지 여사가 ‘고맙다’고 쓴 카드가 꽂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대중 당시 총재가 그 기사를 읽고 격려전화를 해 왔다는 말을 전하면서 소년처럼 멋쩍게 웃던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비주류에, 소수파였다. 동교동계와도 거리를 두었다.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엔 여당 속의 야당이었다. 그의 원칙론이 더 빛을 발했다. 그 무렵 김대중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을 중심으로 그에게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탁월한 의정활동엔 무관심했던 언론들이었지만 이때부터 그의 말 한마디마다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정권 비판의 좋은 소재였던 셈이다.

노무현 정권 들어 민주당 대표로서 탄핵을 주도한 것은 그로서는 일생일대 ‘도박’이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하고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뒤 기자는 칼럼(2004년 5월26일치)에서 그가 ‘민심’을 잘못 읽었다고 썼다. 보수·수구 대 개혁·진보라는 한국정치의 더 큰 판을 읽지 못한 데 대한 지적이었다. ‘적장의 목을 벨 운세’라는 둥 자신을 한껏 띄워올린 보수언론에 속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번 재보선 뒤 조 의원은 “탄핵에 대한 명예회복”이라고 해석했다. “지금은 탄핵사유가 더 늘었다”고도 했다.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오점’을 씻어내고 싶은 심정은 정치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탄핵이 남긴 후유증을 보면, 그의 당선만으로 쉽게 탄핵 과오를 복권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민주당은 탄핵 이후 60석에서 9석의 소수당으로 몰락했다. 국민에게 용서를 빌며 삼보일배까지 했지만 탄핵 역풍을 막지 못했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지금도 12석의 제3당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번에 조 의원을 당선시킨 민의는 무엇일까. 〈한겨레〉 기자들이 재보선 직후 성북을 지역을 찾았더니 “탄핵을 주도했기 때문에 찍었다”고 밝힌 사람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의 지지율이 바닥 수준이라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하지만 ‘탄핵’에서 당선 사유를 찾는 것은 정답이 아닐 듯싶다.


오히려 민주당의 현주소를 제대로 보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대선을 앞둔 지금, 조 의원은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무얼 바라고 있는지 다시 ‘민심 읽기’를 시험받고 있다. ‘원칙’과 함께 ‘큰판’을 읽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이택 국내 편집장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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