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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대사령 / 김회승

등록 2006-07-23 21:21

김회승 논설위원
김회승 논설위원
유레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면권은 권력자의 특권이었다. 동양에서는 한 명이라도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 음양의 조화가 깨지고 군주의 덕이 손상된다고 생각했다. 중세 가톨릭은 고백성사로 죄는 사함을 받지만 벌은 그대로 남는다며 교회가 신을 대신해 사면권(면죄부)을 행사했다. 신격화한 권력은 사면을 군주의 은사이자 신이 내리는 용서로 규정했다.

예부터 사면의 본질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다. 로마를 점령한 카이사르는 정적들을 대거 방면함으로써 민심을 얻으려 했고, 삼국통일을 한 신라 문무왕은 빚진 이들의 채무까지 면제해주며 화합을 도모했다. 요즘 말로 하면 국민화합이나 민심수습쯤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집권 기반이 취약하거나 민심이 흉흉할 때면 대사령은 잦아졌다. 특히 폭정과 정쟁이 심할 때는 정치적 우군을 구명하려는 상소와 청원이 줄을 이었다. 뜻있는 지식인들은 백성들의 법 의식을 마비시킨다며 잦은 사면을 반대했다. 조선시대 이황과 이익은 대표적인 사면 비판론자였다. 후한의 유학자 왕부는 〈잠부론〉에서 “근래에는 해마다 사면이 있으니 죄를 짓고도 은혜를 바라며 습관적으로 가볍게 간악한 짓을 저지른다”며 도덕적 해이를 걱정했다.

현대에는 법치와 삼권분립의 예외인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추세다. 독일은 60여년 동안 단 4차례 사면을 했다. 미국은 청원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고, 프랑스는 비리 공직자와 마약사범 등을 원칙적으로 제외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 고유 권한’으로 80차례가 넘는 사면이 이뤄졌다. 그때마다 비리 정치인과 기업인은 늘 ‘은사’를 받았다.

올해도 광복절을 앞두고 특별사면 얘기가 솔솔 나온다. ‘끼워넣기’니 ‘막판떨이’니 욕을 먹더라도 정치적 빚을 갚겠다면 얼마나 화끈한 자비를 베풀지 그저 지켜볼밖에.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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