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준 여론팀장
유레카
기원전 5~4세기 그리스에 소피스트들이 있었다. 당시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웅변술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대였다. 또 국가 검찰제도가 없어 누구라도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을 고발(기소)할 수 있었던지라 변론술도 필수였다. 소피스트들은 이런 웅변능력과 변론술을 가르치고 돈을 받았던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소피스트라는 말 자체가 ‘지혜로운 자’란 뜻이니,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궤변론자’로 번역되는 것이 억울할 법도 하다.
우리 역사에서는 갑오개혁(1894년) 이전에는 지방 수령이 행정사무의 일환으로 재판 업무까지 총괄했다. 조선시대에 모든 거래와 소송은 문서로 이뤄졌는데, 그 형식이 너무 복잡해서 소송 당사자들은 다른 이의 송사를 대신 맡아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사서 대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고용대송(雇傭代訟)은 1478년(성종 9년)에 금지됐다가 1903년에 〈형법대전〉 공포로 완화됐고, 1905년 일본 변호사법을 모법으로 한 변호사법과 변호사 시험규칙이 공포되면서 근대적 의미의 변호사가 탄생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더라도 애당초 송사에 휘말리지 않느니보다 나을 순 없다. 특히 돈 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그렇다. 최근 국회는 사선 변호인이 없는 모든 피고인이 국선 변호인을 선임받을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이 제도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의 확보다. 소피스트들이 궤변론자라는 오명을 얻은 것은 모든 사물현상을 회의적 태도로 바라본 나머지 진리와 정의의 가치마저 의심한 ‘지식 기술자’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격언에 사람 냄새를 불어넣는 우리 시대의 소피스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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