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 논설위원
유레카
손자병법을 낳은 손자(손무)는 “병력이 적의 열 배면 포위하고, 다섯 배면 공격하며, 갑절이면 병력을 나누어 적을 상대하고, 대등하면 맞서 싸워야 하며, 적으면 능숙하게 퇴각하고,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세면 교전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게 이길 수 있다”(知彼知己 勝乃不殆)도 흔히 인용되는 말이다. 전국시대 연나라는 작은 나라면서도 합종연횡의 외교력과 철저한 준비 끝에 대국인 제나라에 큰 승리를 거뒀다. 손자는 ‘지피지기’ 뜻을 함축한 지(知)에 대해 손자병법에서 79차례나 언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나라는 제나라 함락을 눈앞에 두고 주장을 ‘악의’에서 ‘기겁’으로 바꾼 뒤에 큰 반격을 당한다. 기겁은 ‘먼저 전쟁을 벌인 후에 이길 방도를 찾는’(先戰而後求勝) 인물의 전형이었다.(〈손자에서 직접 배운다〉)
손자병법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비춰보면 어떨까? 6월 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협상을 위해 한국은 146명에 이르는 대규모 협상단을 보냈다. 7월 서울의 2차 협상에 미국이 보낸 협상단은 80명이다. 협상단 규모로 보면 한국은 미국을 협공할 수도 있는 정도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국력과 협상력 열세를 웅변할 뿐이다. 새로 얻어낼 것은 별반 없고 지킬 건 많으니 협상 인력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국력과 협상력으론 싸움을 피해야 하는데 허장성세 부리는 형국이라면 지나친가. 작은 나라가 큰 나라와 겨루기 앞서 ‘지피지기’는 했을까? 협상 시작 과정을 보면 ‘선전 이후 구승’ 이 걸맞다.
손자는 정치적 조건도 강조했다. 이기려면 백성과 군왕의 바람을 일치시켜 위아래가 같은 마음을 가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도 없으니, 손자가 살아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나선 한국을 보면 뭐라고 할까?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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