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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영혼의 파괴 / 조일준

등록 2006-07-06 18:49수정 2006-07-18 13:45

조일준 여론팀장
조일준 여론팀장
유레카
히틀러 친위대(SS) 간부이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5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독가스실로 보낸 실무 책임자다. 그런 그도 가정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미국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본 뒤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했다. 악행은 인간의 ‘악마적 속성’이 아니라 ‘사고력의 결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라크 점령 미군 병사들이 치밀한 계획 끝에 민가에 들이닥쳐 15살 소녀를 성폭행하고 7살 어린이를 포함한 일가족 넷을 몰살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세계를 크게 놀라게 했다. 미군 당국은 이 야만을 병사 개인의 인격장애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주범인 스티븐 그린은 사건 3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미군 홍보지 〈아미 뉴스 서비스〉의 머릿기사에 큼지막한 사진으로 실린 바 있다. ‘연합군이 이라크 거리의 안전을 지킨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병사들이 수색 중에도 주민의 권리와 재산을 존중함으로써 쌍방이 근본적 신뢰를 쌓아왔다”고 썼다. 그린도 미국의 집에서는 착한 아들, 이웃에겐 좋은 청년이었을지 모른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이데올로기가 자기의 신념이나 행위로 내면화하는 순간, 인간은 능동적 인격체에서 수동적 집단의 일원으로 전락한다. 파시즘이든 나치즘이든 제국주의든, 그것이 전체주의다.

최근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자국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미국이 더는 ‘희망의 등불’이 아니며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아주 형편없는’ 또는 ‘끔찍한’ 지도자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미국은 바깥세계에 무지하거나 배려가 없으며 돈벌이에만 골몰하는 저속한 나라로 봤다. 미국이 몇몇 나라에 붙여준 이름이 많다. 불량국가, 깡패국가, 악의 축 ….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고 악행에 무감각하게 하는 나라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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