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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신문선-하다’ / 이길우

등록 2006-07-06 18:35

이길우 선임기자
이길우 선임기자
아침햇발
7년 전 신문선씨에게 글을 부탁했다. 당시 최고 인기 축구해설가였던 신씨는 스포츠계에선 보기 드문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축구 선수 출신으로 방송해설을 하면서, 스포츠 신문에 축구 관전평을 썼다. 또 스포츠 용품 회사에서 마케팅과 홍보 부문 간부로 10여년 근무했고, 대학원에서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이사직까지 맡았다. 스포츠 현장을 여러 각도에서 오랜 기간 접한 것이다.

신씨에게 부탁한 글은 〈한겨레〉 스포츠면에 일주일에 한번씩 쓰는 스포츠 관련 칼럼이었다. 1년 동안 쓴 ‘신문선의 스포츠 엿보기’라는 고정 칼럼에 신씨가 맨 처음 보내온 글은 ‘정몽준 회장님께’라는 서한 형식의 글이었다. 신씨는 글에서 정 회장은 각종 국제대회의 참패 책임을 감독에게 돌리고, 감독 경질이라는 임시방편으로 분노한 국민을 진정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정몽준 플랜’이 있어야 한다면서, 능력있는 축구계 인사들과 손잡고 큰 틀의 축구 행정을 펼칠 것을 부탁했다. 정 회장으로서는 매우 아픈 글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축구계에서 정 회장의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누구도 그에게 ‘노(no)’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 글을 계기로 신씨는 축구계 주류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정 회장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1년간 자신의 칼럼을 통해 축구협회의 행정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을 하던 신씨는 유형무형의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해설을 하는 방송사와 글을 쓰는 몇몇 신문사 고위층에게 로비를 벌여 마이크와 펜을 빼앗으려는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금품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려고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신씨는 한국 축구를 한 부품만 고장나도 제기능을 못하는 ‘로봇축구’, 국내 리그를 육성하지 않고 국제대회 반짝 성적을 노리는 ‘꽃꽂이 축구’로 비유하며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신씨는 이런 내용의 글을 보내면서 “정말 갈등이 생겨. 이 글을 쓰고 또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하나. 내가 왜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하나”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말도 못하면 축구의 개혁은 어려워지고, 힘과 돈을 갖고 있는 조직과 사람들에게 지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신씨는 남들이 모두 “오프사이드”라고 할 때, 혼자 “오프사이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방송사로부터 소환조처를 당했다. 마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차범근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도중하차했듯이. 신씨는 시청률 부진의 책임을 지고 예정됐던 경기의 해설을 못한 채, 조기 귀국을 해야 했다.

축구 해설가로서의 생명이 위기에 처했으나 신씨는 떳떳했다. 자신의 축구에 대한 지식을 통해 내린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판단은 변함없다고 했다. 국제축구연맹(피파)도 주심의 판단은 옳았다며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의 8강전에 다시 주심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오프사이드 논란 직후 일방적으로 신씨를 몰아붙이던 국내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분해지고 냉정해졌다. 광풍처럼 몰아치던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휘둘려 패배의 분풀이 대상을 찾던 마녀 사냥식 비난이 사그라진 것이다.

신씨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패배를 인정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라며 “스포츠가 더이상 정치적이고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문선하다’라는 용어를 만든다면, 그 뜻은 ‘바보스럽다’일까, 아니면 ‘용기 있다’가 될까?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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