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
성한용칼럼
해방 이후 남과 북에 각각 정권이 수립되자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 민중의 봉기를 선동했다. 북한의 이런 노선은 남한의 민주화 운동 세력에 큰 부담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북한의 간첩으로 몰았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 말기의 ‘폭압정권’ 시절 대학 시위 현장에는 가끔 ‘김일성은 오판 말라’는 구호가 등장했다. ‘우리는 남한의 민주화를 요구할 뿐 북한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니, 착각해서 남침을 시도하지 말라’는 정도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사실은 북한보다는 수사기관과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한 고려였다. 지금 보면 유치하지만, 당시에는 절박했다. 냉전시대에는 냉전시대의 논리와 생존 방식이 있었다.
냉전시대가 가고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리는 공포는 사라졌다. 그런데도 냉전시대의 논리는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북한 당국자들의 한나라당 비난 발언은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 ‘내부용’이다. 그래도 요즘 도가 지나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온 나라가 전쟁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의 말은 남쪽의 ‘수준’을 무시한 폭언이었다. 남한에서 북한의 협박에 놀아날 유권자들은 없다. 그는 광주에까지 모습을 드러내 남쪽 사람들의 기분만 나쁘게 만들었다. 조평통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박근혜 전 대표를 ‘유신의 창녀’라고 비하한 것은 더 심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한 박 전 대표를 극진히 환대한 일이 있다. 그 뒤 북한은 박 전 대표에 대한 직접 비난을 삼갔다. 북한도 통제력에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좀 어이가 없다.
북한은 그렇다고 치자.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은 안경호 국장의 발언에 대해 지난 15일 논평을 냈다. “정부 여당과 북한이 한나라당의 집권 저지라는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해서 어떤 책략을 펼칠 것인지 한나라당은 지금부터 모든 가능성에 대해 면밀하게 대비해야만 한다.” 80년 서울의 봄에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바로 그 심재철이다.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너무 심하다.
안경호 국장 발언에 이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움직임이 겹치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냉정을 잃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인 송영선 의원은 “이른 시일 안에 미국의 미사일방어 체제에 편입돼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게 현실적인 대응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 정부가 미국, 일본, 유엔과 함께 대북 금융제재를 취하고 압박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반도를 미-중 대결의 최전선으로 만들려는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강경파의 논리 그대로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석했던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북한 당국자들에게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 하지 말고 보수세력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북쪽 인사들은 “서로 잘 해보자”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북한은 변해야 한다. 그렇지만 한나라당도 변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기만 했다.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란 것이 있긴 있는지 의심스럽다. 남북관계는 냉엄한 현실이고 유권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남북관계에서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집권은 어렵다.
“소극적·방어적인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한의 공동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역동적인 통일 한반도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 나간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 전문에 나오는 얘기다. 선임기자 shy99@hani.co.kr
“소극적·방어적인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으로 전환한다. 이를 통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북한의 공동 발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역동적인 통일 한반도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 나간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 전문에 나오는 얘기다.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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