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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네번째 자살을 꿈꾸는 사나이 / 이길우

등록 2006-06-15 19:04

이길우 선임기자
이길우 선임기자
아침햇발
어릴 적 꿈은 전원에 ‘하얀집’을 짓고 사는 것이었다. 직접 그런 집을 지으려고 대학 전공도 건축과를 택했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건축 공사장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고였다. 목재를 나르다 뒷머리를 다쳤다. 머리 뒤쪽 시신경이 상해 시력이 사라졌다. 한쪽 눈은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고, 다른 쪽 눈은 아주 희미하게 물체 윤곽만 보인다. 절망이었다. 온갖 비방을 동원했지만 사라진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죽고 싶었다. 몰래 모아둔 신경안정제를 수십알 먹었다. 20년 전 겨울이었다. 실패했다. 그렇게 몇 해를 끝없는 방황 속에서 헤매다가 산으로 갔다. 그리고 넥타이로 목을 맸다. 허공에 매달려 몽롱하던 차에 ‘뚝’하고 넥타이 끈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목숨은 모질었다. 혼자 펑펑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했다.

맹인 재활센터를 찾아가니, 점술이나 안마 가운데 하나를 배우라고 권했다. 안마를 배우고자 3년 과정의 맹인학교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점자도 배우고 정말 열심히 안마를 배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어올랐다. 인체의 600여 경혈을 모두 외웠다.

침술도 함께 배운 뒤 사회로 복귀했다. 그리고 20평짜리 조그만 안마원을 차렸다. 열심히 일했다. 허리가 불편해 안마치료를 받으러 온 처녀를 치료하면서 사랑이 싹터 그녀와 결혼도 했다. 아들딸을 두었다. 나름대로 행복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안마원 주변에 ‘스포츠 마사지’ ‘휴게텔’과 같은 멀쩡한 사람이 안마를 하는 퇴폐성 업소들이 생기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그들과 경쟁을 했다. 2만원 하던 안마비를 1만원으로 깎았다. 그러나 몇몇 단골손님 외엔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 철저하게 패했다. 그러던 차에 헌법재판소는 ‘맹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증을 주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이자 끝인 그의 생계수단이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이다.

“양보요? 한 발 양보하면 그대로 절벽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한강 다리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강에 투신하기로 결의했다. 더는 살아갈 자신이 없어진 것이다. 빚 갚을 일도 막막하고, 가족을 부양할 방법도 사라졌다. 투신하기 바로 직전, 뒤에서 울부짖던 한 동료가 ‘현아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다. 세 살 난 딸이다. 정말 이쁜 딸이다. 이제 말을 배워 틈만 나면 휴대전화로 전화해 “아빠 따랑해”라고 속삭인다.

정말 한강은 무서웠다. 그리고 너무 억울했다. 희미하게 시력이 남아 있는 한쪽 눈을 마지막으로 힘껏 떠 보았다. 강물은 무섭도록 검게 넘실거렸다. 며칠 동안 농성하던, 비둘기 배설물이 가득 찬 다릿발 공간에서 동료들과 손을 잡고 강을 향해 섰다. 이제 세번째 자살 시도인 셈이다. “제발 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기원했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오랫동안 떨어진 느낌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였다. 깨어보니 병원이었고, 머리는 어딘가 부딪쳐 꿰매야 할 만큼 다쳤다. 밑에 있던 경찰이 구조했다.

그는 오늘도 다시 한강에 나간다. 한국과 토고의 축구전이 벌어진 그날 밤에도 그는 동료들과 그 냄새나는 다릿발 공간에서 검은 강물을 느끼며 보냈다. 지난달 30일 한강에 투신한 네 사람의 시각장애 안마사 중 가장 먼저 뛰어내렸던 김용화(40)씨, 그는 네번째 자살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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