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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최열의 ‘탱자론’ / 김회승

등록 2006-06-08 20:56수정 2006-06-09 16:38

김회승 논설위원
김회승 논설위원
아침햇발
환경운동의 대부 격인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엊그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의 직무 인수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섰다. “오세훈한테는 아직 귤맛이 난다”는 게 이유다. 달고 맛있는 귤도 탱자가 되고 마는 정치판에서 나름의 건강성을 잃지 않고 있어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 오세훈’을 만들어 준 각별한 인연과 신뢰가 크게 작용했을 터이다.

최열 대표의 행보가 적절한지를 따지자는 건 아니다. 속내를 모를 일에 외도냐, 변신이냐를 추론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그는 고건 전 총리의 두뇌집단으로 불리는 조직에도 이름을 올렸고,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 캠프의 환경 정책에 도움을 준 적도 있다. 이런 전례 때문에 시민사회에선 환경운동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명분이나 처세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평소 소신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시민사회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걸 보면, 노무현 정부 들어 ‘환경 비상시국’을 낳은 뼈아픈 경험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는 사회적 발언과 행동이 필요할 때 몸을 아끼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함께 머리띠를 둘렀던 이들이 장관과 총리가 되고 국회에 입성했지만 그는 25년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이는 무색무취하고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나 단체의 기업모금과 영리활동에 대한 비판 여론을 딛는 힘이기도 했다.

그는 정치를 두고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정치 풍토는 아직도 귤을 심으면 귤이 안 열리고 탱자가 열리는 것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치를 안 하려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또 “개별적인 현실정치 참여는 시민운동의 지평을 넓히기 어려울 뿐더러 시민단체를 정권의 보충대로 인식시킬 위험이 있다”며 명망있는 시민운동가의 정·관계 진출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지난 3월 박원순·지은희씨 등 대표적인 시민운동 1세대들과 함께 시민사회포럼을 주도해 만들었다. 현재의 시민운동이 위기라는 공통된 인식이 출발점이었다. 특히 그가 맨손으로 일궈온 환경운동은 노무현 정부 들어 엄청난 시련에 직면했다. 새만금, 북한산, 천성산 문제뿐 아니라 국토 균형개발을 내건 행정중심 복합도시·기업도시 등 반환경적 개발과 정책들이 넘쳐났다. 정권 출범 1년 만에 ‘환경 비상시국’을 선언하고 정부와 전면전을 치러야 했고, 지금까지 소통은 냉랭하다. 게다가 환경운동의 맏형격인 단체들은 내부 갈등 속에 많은 활동가들이 떠나면서 대안 부재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녹색당을 꿈꾸며 생활정치에 뛰어든 이들은 싹쓸이 태풍이 몰아친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두 자리를 건지는 데 그쳤다.

이런 이유로 최 대표의 세례를 받고 자란 후배 운동가들은 맏형의 처신에 복잡미묘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잘 기르고 보살펴야 할 수많은 귤나무를 현장에 놔두고, 탱자가 될지도 모를 강건너 귤에 정성을 들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로로서 후배들과 함께할 끈을 이어가지 못했고, 스스로 설자리를 찾기도 마땅치 않다는 얘기도 한다.

인수위 활동은 보름 남짓이면 끝난다. 서울시정의 밑그림과 환경정책에 그의 경험과 소신, 시민사회의 의견이 적극 반영될 수 있다면 적잖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비판이나 조언이 아니라 직접 설계도를 그린 책임 또한 상당 부분 지고갈 수밖에 없음도 분명하다. 싱싱하고 시큼한 귤은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고 자란 열매여야 더욱 제맛이 나지 않던가.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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