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4년 전 한-일 월드컵 때 한 인도 소녀가 한국 땅을 찾았다. 당시 열다섯살이던 소니아는 월드컵 열기에 들뜬 세계를 향해 호소했다. “컴컴한 집안에서 하루종일 축구공을 꿰맸어요. 역겨운 실 냄새 때문에 눈과 머리가 너무 아팠어요.” 다섯살 때 바느질을 시작한 소니아는 일곱살에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여동생 셋도 학교를 다니며 바느질을 도왔지만, 하루종일 일하고 받는 14루피(우리돈 300원)는 우유 1ℓ를 사기에도 부족했다.
월드컵을 치를 때마다 축구공의 과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공인구 생산을 독점해 온 아디다스는 더 빠르고 가볍고 탄력있는 공을 만드는 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기술을 동원해도 바깥쪽 가죽을 여미는 공정만큼은 온전히 손작업에 의존해야 했다. 공 하나에 1600여번의 세밀한 박음질을 하려면 숙련공도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런 점에서 2006 독일 월드컵 공인구 ‘팀가이스트’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경기인들은 공을 둘러싼 조각 수를 열넷으로 줄여 탄성과 회전력을 높인 것에 주목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고압에서 본드를 이용해 가죽을 붙이는 신기술 개발이다. 일일이 손박음질에 의존하지 않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국제축구연맹과 아디다스로서는, 어린이의 노동을 착취한다는 오랜 국제적 비난을 벗고 축구공의 기술적 발전에 속도를 한층 더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아디다스의 ‘인도주의적 기술혁신’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의 빈민층 아이들은 더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수십년 동안 축구공 바느질에 기대 생계를 꾸려 온 수만 가정이 졸지에 일감을 잃은 때문이다. 동생들 손에 가죽과 바늘 대신 책과 연필을 쥐게 하고 싶다는 소니아의 소박한 꿈이 이뤄질 날은 과연 언제일까.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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