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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노무현 정치’의 실패 / 김종철

등록 2006-05-28 18:40수정 2006-06-09 16:05

아침햇발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입니다. 일을 못하면 가차없이 해고당합니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정규직입니다. 일을 잘못해도, 좀 썩어도 고용이 보장돼 있지요. 슬프더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국민들에게 “싹쓸이만은 막아달라”고 지난주 열린우리당이 호소문을 발표했던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시사평론가 김용민(33·‘최광기의 에스비에스 전망대’ 중 ‘시사공작소’ 출연)씨의 짧은 몇마디가 귀를 잡아당겼다. 한나라당은 30~40%의 고정 지지층이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정적인 득표가 가능하지만, 고정 지지자가 거의 없는 열린우리당은 인기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추락한다는 것이다. 촌철살인의 명쾌한 비유다.

열린우리당의 이러한 비정규직 신세는 사실 출생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정치적 기반(호남)을 스스로 허물고 대신 사납고 거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매우 비우호적인 세계(영남)를 향해 뛰어드는 ‘신자유주의 정치’를 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불굴의 도전 정신은 멋있어 보였지만, 정치적 효과가 의심되는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는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모든 것을 거는 ‘올인의 정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필연적으로 한나라당, 또 한지붕에서 갈라진 민주당 등 야당과의 날선 대립이 이어졌으며,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불렀다. 하지만, 생존이 위태로웠던 열린우리당은 그 덕분에 17대 총선에서 손쉽게 승리해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더구나 호남에서 민주당을 확실하게 누름으로써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뒷받침해 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뤘던 민주개혁 세력의 대표주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탄핵 역풍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 그 뒤 여러차례 치러진 호남지역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 연패함으로써 확인됐다. 두 당은 지금도 호남 주도권을 놓고 다투고 있지만, 많은 흠결(민주당)과 정치적 배신에 대한 부담감(열린우리당) 때문에 누구도 쉽게 승자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분열의 고착화다.

또 보수적인 영남을 끌어안으려는 신자유주의 정치는 때때로 자신의 정체성을 저버리기 일쑤였다. 열린우리당의 수석당원인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던 일이 대표적인 예이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지자들의 마음을 떠돌게 만들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은 데 이어 사학법 개정과 부동산 문제 등에서 끊임없이 ‘고객’ 만족의 정치를 펼쳐 왔다. 그 지지자들 역시 정권을 반드시 탈환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자발적인 충성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지난 총선 때의 탄핵 역풍에도 121석을 얻은 것은 이 힘이다. ‘국민’들이 견제와 균형을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지지자’들이 한나라당 몫을 지킨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싹쓸이는 박근혜 대표의 피습사건 이전부터 이미 예상됐던 바다.

2003년 9월 노 대통령은 민주당 분당을 앞두고 “옛날 그대로 기득권을 가지고 그냥 가는 것으로는 우리 정치가 달라질 수 없고 민주당이 전국정당이 될 수 없다”며 ‘창조적 파괴를 통한 신당 창당’을 지지했다. 그로부터 3년이 못 돼 여권에서는 민주당과의 당대당 합당론이 나오고 있고, 노 대통령 직계그룹에서는 강하게 반발하는 등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무현 정치’의 실패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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