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주말 아침, 서울 강남의 한 운동시설에 갔더니 지방선거 출마자인 듯한 인물이 인사를 하고 다녔다. 한 표를 호소하려는 것인가 했는데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축하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마치 당선자를 대하는 듯 화기애애했다. 본인도 쑥스러운 듯했지만 당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선거 하나 마나’라는 분위기였다.
몰려 있던 사람들에게 “저 사람 어떤 사람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알게 뭐냐, 한나라당이니까 찍는다’는 것이었다. 선거란 뚜껑을 열어봐야만 결과를 아는 것이라지만 5·31 지방선거는 여론조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다. 특정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식하는 사태는 위험하고도 불행한 일이지만 지금으로선 어쩔수 없는 상황인 듯하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천하장사가 나왔어도 판세를 뒤집을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강남이라는 특수한 곳에서만 이런 현상이 있는 건 아니다. 부자와 기득권층, 보수언론의 죽기살기식 한나라당 지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강북에서 만난 택시기사는 빨리 정권이 바뀌어야 먹고 살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서민들 살기 좋아질 것 같냐”고 하니까 ‘경기가 활성화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택시승객도 많아지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런 판국이라면 한나라당의 간판을 달고 나오면 누구든지 이기게 돼 있다. 일찍이 서울시장 후보로 뛰었던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만 억울하게 된 것 같다. 굳이 인물좋은 오세훈 후보를 영입하지 않고 홍 의원이 후보가 됐어도 당선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니까.
이번 선거는 인물론도 아니고 정책대결도 아니다. 선거에서 쟁점이 없다는 것은 유권자에게도 후보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정책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의식이 실종되고 어떤 것도 물을 필요가 없는 ‘묻지마 선거’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식이다. 대통령선거의 전초전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자는 부동산값이 올랐는데 그 중 일부를 세금으로 거둬간다고 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부동산 값이 이 정권 들어서 너무 오른 것에 대한 배반감과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싫다는 거다. 여기에 부동산값 상승으로 부자대열에 낀 중산층까지 가세하고 있다.
선거구호를 살펴보면 언제부터 한나라당이 깨끗한 당이었는지는 몰라도, 공천비리로 당의 중진들이 줄줄이 구속됐어도, 어쨌던 깨끗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한나라당은 집권여당이 무능정권이라고 한다. 왜 무능정권이냐 하면 세금을 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못한다. 당의 인기가 낮은 탓도 있지만 후보들까지도 당과 거리를 둔다. 후보자들이 어떤 당 출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책대결 없이 두루뭉술하다.
열린우리당의 이런 지리멸렬은 지지세력이 등을 돌렸다는 데 있다. 집권 3년을 지내면서, 기대를 걸었던 지지자들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어떤 선거도 자기표는 확실히 굳히고 부동층을 공략해야 하는데 어디 있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부동층을 향해 후보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내세우는 것은 그만큼 열린우리당이 구심점도 없고 확고한 정체성도 없다는 증거다. 차별적인 정책을 부각시키고 비록 국민적 지지는 낮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떳떳하다.
지는 선거라 할지라도 정책에서 졌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우리 정치의 앞날을 기대할수 있다. 이런 식의 묻지마 선거 풍토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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