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한명숙’이라는 인물이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화려한 경력과 후광으로 총리가 된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대중들에겐 전혀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여성의 이름이 주요 자리에 오르내릴 때면 교수나 법조계 인사 범주를 벗어난 적이 없다. 남성 쪽도 마찬가지다. 정치입문 6년 만에 총리가 된다는 것은 남성사회에서도 불가능하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여성으로서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버지의 후광으로 얻은 자리이고 이름이다. 박 대표와 짝지어 여성 정치인 시대가 왔다고 말하지만 역사성으로 볼 때 박 대표의 맞선점에 한 총리가 있다는 데서 그 의미는 구별돼야 한다.
그는 정치에 입문할 때까지 눈에 띄는 직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여성민우회라는 당시 아주 작은 여성단체를 이끌었고, 이런 단체들의 모임인 여성단체연합의 부회장을 지냈을 뿐이다. 정말 밑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여성운동의 현장에 있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사회가 아니었으면 여전히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 때 첫 여성부 장관, 참여정부 들어 첫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그동안 여성 장관은 한번 발탁하고는 잊혀졌다. 오랜 재야 경력과 한명숙이라는 이름이 주는 믿음성이 총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힘이다. 재산공개에서 보듯 진짜 서민총리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서민적으로 보이지만 변호사라는 우리 사회의 특권층에 있었고, 한때는 잘나가는 변호사로서 누릴 것을 제법 누리고 살았다는 점에서 진짜 서민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 총리의 등장은 역사·정치·사회적으로 우리 시대가 한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여성부 장관 시절 여성 관련법을 개정할 때 지독히 보수적이고 반여성적인 발언을 한 의원을 만나면 화를 내기는커녕 두 손을 꼭 잡고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이번에 꼭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함박웃음을 지어서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는 술회를 들은 적이 있다. 목표는 분명하나 태도가 겸손하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총리 부부는 지금 예순살을 넘은 한국의 전형적인 부부상이 아니다. 요즘 세대에 맞는 동반자적 부부상이라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남편이 마련해준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는 뉴스는 여성들에게 준 신선한 선물이다. 그는 양극화 문제 전문가다. 그가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간사로 일한 1970년대는 우리 사회에서 최초로 양극화 문제가 제기된 시기였다. 70년대는 전태일의 분신으로 막을 연 시대다.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라는 전태일의 탄식에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은 대학생들이 다투어 노동현장으로 들어간 시기다. 개발독재의 후유증으로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던 시기이고, 그 중심에 크리스찬아카데미가 있었다.
지금 제2의 양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총리로서 그가 이런 문제를 두고 젊은 시절의 열정을 꼭 기억하고 있기를 바란다. 거기에 한명숙의 역사성이 있다. 지방선거가 코앞이고 각 당이 이에 목을 걸고 있는 판세에 그가 총리가 되었다는 점은 안타깝다. 정치바람에 본인의 능력과 다른 문제로 어려운 고비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여성계에서 500여명의 여성을 초청해 대대적인 축하잔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괜한 일이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마침 한 총리의 만류로 이 기획이 취소됐다고 한다. 여성계나 그가 나온 대학, 속했던 단체 등에서 더는 한 총리를 사유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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