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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베이비붐과 고령화시대 / 박찬수

등록 2006-04-09 20:46

워싱턴 박찬수 특파원
워싱턴 박찬수 특파원
아침햇발
지난달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기사를 쓰면서 자료를 뒤적이다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베이비붐이 한창이던 1950년대 미국의 풍경을 담은 사진들이다. 오래 전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중 하나는 ‘아기 경주’ 모습이었다. 토실토실한 아기들이 출발선 칸막이 안에 경주마들처럼 죽 늘어섰다. 10m 남짓 결승점엔 장난감이 놓여 있다. 1960~7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우리의 우량아 선발대회를 연상케 한다. 또 한장은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 교실에 학생들이 빼곡이 앉아 일제히 손을 들고 있는 사진이다. 미국에도 교실이 저렇게 붐비던 때가 있었나 싶다. 50년대 내내 캘리포니아에선 매주 새로운 초등학교가 하나씩 문을 열었다고 한다. 70년대 초 서울의 초등학교 학생 수는 보통 한 반에 70명을 넘었다. 교실에 책상을 놓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20년의 시차가 있지만 미국과 한국은 알게 모르게 베이비붐의 비슷한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응은 달랐다. 50년대 미국 자본주의는 새로 태어나는 엄청난 수의 아기들을 ‘미래의 소비자’로 보았다. 출산은 장려됐다. 60~70년대 우리 사회에선 아이를 많이 낳는 걸 죄악으로 여겼다. 정부가 앞장서 이걸 조장했다. 3년 전 워싱턴에 처음 부임해 어느 한반도 전문가와 식사를 할 때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아이들이 몇이냐”고 물었다. “딸 둘”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왜 한국사람은 전부 아이를 둘만 두느냐”고 되물었다. 자신은 아이를 일곱이나 두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순간 당황했다. 우리는 아이 둘 가진 걸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는데, 그게 다른 나라에선 이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내가 첫딸을 둔 게 92년이니 과거처럼 먹을 게 없어 산아제한을 할 시기는 훨씬 지났을 때다. 그런데도 왜 아이를 둘만 낳았을까. 아마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나중에 순서가 ‘딸아들’로, 숫자는 하나로 바뀌었다)라는 표어가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 표어 탓에, 나도 모르게 둘만 낳는 게 책임있는 자세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한국은 극심한 저출산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 많이 낳는 걸 정책적으로 장려해야 할 처지다. 20년만, 아니 10년만 앞을 내다보고 정책을 폈다면, ‘아들딸 …’ 구호를 그렇게 지겹도록 듣지 않아도 됐을 거고, 예비군훈련 때마다 정관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 거다.

첫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난 지 꼭 60년, 올해 미국은 정반대 사회로 들어섰다.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를 시작하는 고령화 사회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노인거주 단지를 매주 하나씩 세워야 할 시대다. 미국은 나름의 준비를 해 왔다. 공무원 채용에 나이 제한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와 50살 넘은 이가 정부기관 인턴으로 함께 근무하는 걸 보기는 어렵지 않다. 정부 사업을 따내려면 민간기업도 ‘나이차별 금지조항’을 지켜야 한다. 그러니 민간기업이라도 이력서에 나이를 적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는 어떤가. 나이차별이 더 심해지는 게 아닐까. 나이든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는 조직은 죄악시하는 분위기다. 지난날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다시 보는 듯하다. 눈앞의 효율성에 매몰되면 10년, 20년 뒤엔 지금의 저출산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균열이 올지 모른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우선 이력서나 소개서에 생년월일을 적는 칸부터 없애면 어떨까.

박찬수 워싱턴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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