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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세계화라는 환상

등록 2006-04-03 21:35수정 2018-05-11 14:50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칼럼
아흔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것을 빼앗아 백을 채우려 한다는 속담이 있다.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무한경쟁이니 하는 구호를 들을 때마다 이 말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극대화가 신자유주의이며, 승자 나라가 독식하는 것이 세계화의 숨은 전략이다. 부자 나라가 전지구적으로 벌이는 세계화 전략은 많이 가진 놈이 더 갖자는 것이지, 많이 가진 나라가 적게 가진 나라에 무엇인가를 나눠주겠다는 게 아니다.

미국이 그처럼 끈질기게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물고 늘어진 것을 봐도 그렇다. 미국영화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85%다. 우리나라에서만 미국영화의 점유율이 주춤거리거나 조금 낮아지는 일시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한국영화의 호황을 보이는데도 미국영화의 점유율은 거의 60%에 이르렀고, 최근 한두 해 50%를 밑돌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미국영화 점유율을 85%까지 끌어올려야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기업이 경쟁을 해도 한 상품의 시장 점유율이 이렇게 높으면 독과점 방지니 뭐니 해서 제재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바로 세계화다.

지난 한 해 이리저리 세상구경을 하며 돌아다녔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두루 다녔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사는 나라인지도 알게 되었고,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진전을 이룬 대단한 사회라는 것도 느꼈다. 세계 10대 부국에는 끼지 못해도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할 때 20대 부국에는 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우리나라의 빈부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지 않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외국여행을 해 보면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어마어마하게 잘살지만 국민은 대부분 입에 풀칠하기가 고작이다. 그래서인지 더 빈부격차가 늘어나도 괜찮으며 우리 국민들의 지나친 평등지향 주의가 나라 정책의 발목을 잡고 국가 경쟁력과 세계화를 저해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치르면서 극소수 층을 빼놓고는 국민의 생활수준이 상당히 평준화됐다. 70년대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며 양극화가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중산층이 꽤 단단하게 형성되었다. 그러한 것이 우리 사회를 정치적으로 역동적으로 진전시킨 요인이다. 그러나 아이엠에프 외환위기가 닥치고 세계화가 진전된 90년대부터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지금은 새로운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했을 때 적어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 전략을 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완할 대책은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노 대통령도 집권 3년이 지났으면서도 그러한 문제에는 아직 손도 못 쓰고 있다는 것을 자인했으니 기대감은 배반감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이 못하면 야당이라도 제구실을 해야 하는데, 야당은 정부·여당보다 더한 세계화 주의자들이다. 결과에 대해서만 모두 정부·여당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정치공세를 펴고 있을 뿐이다.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세계 무역 구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정치인은 없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가난한 나라는 더 가난해졌고 부자 나라는 더 부자가 되었다. 가난한 나라 안에서 빈부격차가 더욱 커졌다는 것도 수치로 나온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될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것이다. 국민이 세계화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은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 몇 나라의 생활수준이다. 그러나 빈부격차가 동남아나 남미처럼 더욱 커지고 가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대물림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더욱 커 보인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계화인지 우울하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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