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정부는 서울 도심에 몰려 있던 명문고의 강남 이전을 추진했다. 인구 밀집을 유도하는 학교를 옮기고 대단지 아파트를 지어 강남 개발에 나선다는 구상이었다.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1972년 종로구 화동의 경기고를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긴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되자, 동문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기존 교사를 유지해 정독도서관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1976년이 되어서야 이전됐다.
정부는 강북 학교의 신설·확장 금지(1974년), 4대문 안 입시학원의 강남 이전 유도(1976년) 등의 조처를 잇달아 내놨다. 급기야 1978년 대통령 연두순시 지시에 ‘강남 이전 희망 학교에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1980년 서울고는 서초동으로, 1988년 경기여고는 개포동으로 옮겨졌다. 1970년대 이후 서울 도심에서 이전한 학교 20곳 가운데 15곳이 강남·서초·송파·강동으로 갔다.(‘강남의 탄생’, ‘디지털강남문화대전’ 누리집)
이 무렵, 고교 평준화 정책(1974년)이 시행되면서 통학 가능한 범위 내 학교 배정을 위해 학군제가 등장했다. 초기에는 도심의 공동학군(거주지 무관)과 5개 일반학군으로 운영되다가, 인구 증가와 신개발지 확대로 학군 수가 차츰 늘었다. 8학군이 나온 것은 강남 개발이 본격화한 1978년의 일이다. 서울 학군은 1999학년도부터 현재까지 11개로 이뤄졌는데, 8학군은 강남구·서초구를 포괄한다.
8학군은 이른바 ‘교육 특구’로 위세를 떨쳐왔다. 평준화에도 학구열 높은 부모들은 옛 명문고를 따라 강남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몰리다 보니 주요대 진학률이 월등하게 높았다. 1980년 학군제가 출신 중학교에서 거주지 중심으로 배정 방식이 개편되자, 8학군 편입을 위한 주거 이전은 더 늘고 위장전입도 속출했다. 1989년 과외 및 재학생 학원 수강 금지 등 강력한 사교육 억제 정책이 풀리자, 유명 강사진과 관리형 학원을 발판으로 강남 사교육이 본격 번성하기 시작했다.
‘강남 8학군 출신’은 지난 연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에게 따라붙는 대표적 수식어다. 한 위원장은 8학군의 현대고를 졸업했다. 정치인으로서 역량이 검증되지 않다 보니 ‘강남 8학군’ ‘엘리트 검사’ 출신이라는 스펙만 부각된 모양새다. 특정 계층·집단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