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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연예인 공인론’의 불순한 의도

등록 2024-01-02 14:13

배우 이선균씨의 죽음에 대한 경찰과 일부 언론의 해명이 팬들의 분노를 자아낸다. 이씨에 대한 ‘망신주기 수사’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경찰은 “수사를 비공개로 진행했다면 (대중이) 용납하겠나”(윤희근 경찰청장)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이씨 혐의와 무관한 사적 통화 내용을 마치 결정적 물증인 것처럼 보도한 한국방송(KBS)은 “사회적 관심이 커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두 궤변의 밑바탕에는 ‘연예인은 공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공인에 대한 수사와 보도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공인(公人)의 사전적 의미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공적인 일’은 ‘국가나 사회에 관계되는 일’을 가리킨다. 국가적 자원 분배, 정책 입안, 법률 제정과 집행, 인권과 환경 보호, 시장 질서 유지 등 공동체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공인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공동체로부터 위임받거나, 스스로 그 힘을 갖게 된 이들이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기업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민은 이들이 자신의 권한을 공정하게 행사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재산과 납세 내역, 범죄 경력 등의 공개를 요구하고, 이들의 권력 남용에 매서운 비판을 가한다.

연예인은 이런 ‘공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 단지 이름과 외모가 널리 알려져 인지도가 높을 뿐이다. 연예인은 공동체로부터 어떠한 권한도 위임받지 않았다. 연예인은 명예훼손 관련 소송에서도 공직자보다 법의 두터운 보호를 받는다. 대법원은 2022년 한 여성 연예인의 사생활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누리꾼에게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2017도19229). 연예인의 사생활이 아무리 공적인 관심사라 할지라도 공익과 관계가 없으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주장은 ‘진짜’ 공인의 비리 행위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연예인!)으로 돌리는 데 종종 악용된다. 2011년 ‘연예인 탈세 의혹’은 부동산 투기가 의심되는 장관들의 청문회를 앞두고 제기됐다. 뒤늦게 국세청이 ‘세무사의 단순 실수’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해당 연예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됐고, 부동산 투기 장관은 무사히 국무위원이 됐다. 이번 연예인 마약 수사는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자녀 학교폭력 사건과 겹쳤다. 우연의 일치인가.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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