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는 2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도록 지난해 11월 노동법을 개정했다. 원래 해오던 주38시간 근무를 유지하되, 하루 최대 근무시간을 조정해 근무일만 하루 줄였다. 스페인 3대 도시 발렌시아는 지난 4월에 한달간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주4일제 실험에 나섰다. 80만명 인구 중 36만명이 참여했다.
올해 윤석열 정부는 ‘주69시간 추진 논란’으로 여론의 역풍을 맞았지만, 이처럼 나라 바깥에선 주4일제 실험이 한창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계기가 됐다. 여기에 일과 삶의 균형, 건강권, 돌봄, 기후변화 대응 등의 목적이 더해졌다. 발렌시아 노동자들은 주말이 3일로 늘자 운동시간을 늘리고 포장 음식 대신 요리를 해서 먹었다. 스트레스 저하로 정신건강이 좋아졌고, 자동차 사용이 줄어 대기 질도 개선됐다. 영국 기업 60여곳은 지난해 6개월간 주4일 근무 실험을 했는데, 남성 직원들의 자녀 돌봄 시간이 27% 늘었다.
쟁점은 임금이다. 참여 기업을 모집해 주4일제 실험을 주관하는 국제 비영리단체(4 Day Week Global)는 근무시간을 80%로 줄이되 생산성과 급여는 100%를 유지하는 80-100 원칙을 앞세운다.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이 원칙을 곧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곳들도 많다. 이 때문에 제도 안착을 위해 정부가 소득 지원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부분적인 주4일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등은 한달에 한번 주4일 근무를 하고 있고, 포스코 노사는 격주 주4일제 도입에 합의했다. 올해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30명은 6개월씩 주4일제 실험에 참여했다. 참여 간호사의 임금 10%를 삭감했지만 퇴사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따랐다.
지난 15일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각국의 1인당 소득을 비교했는데, 한국은 시장환율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1위, 구매력 평가 환율 기준은 30위였으나 이를 개인의 노동시간당으로 계산하면 47위로 추락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소득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주4일제나 4.5일제는 생산성 향상을 통한 소득보전이 연계되지 않는다면, 호응을 얻기 어려울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러나 실험과 실천에 나서지 않고 여건이 갖춰지기만을 기다린다면, 어떤 변화도 오지 않을 것이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