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진입로. 졸업생들이 방문할 때 추억을 떠올리는 곳. 이병곤 제공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후조 샘, 경수 샘 부부가 이곳 덕산에 돌아왔다. 2002년과 2004년 자녀를 입학시키면서 간디공동체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경수 샘은 시설 관리를, 후조 샘은 학교 식당을 맡아 12년 가까이 학교를 지켰다. 내 의식 속에 두분은 ‘환대’라는 단어로 각인되어 있다. 아무 연고 없이 7년 전 교장이 되어 일하러 온 나를 무조건 환영해주었다.
“샘, 따라오이소. 지금부터 샘을 납치하는 거라예.” 부임 뒤 처음 맞이했던 초가을 어느 날, 후조 샘이 나를 운동장으로 불러내 승합차에 태우며 한 말이다. 근처 월악산에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데 교장실에 갇혀 일만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단다. 송계계곡의 흐드러진 단풍을 구경했던 그날의 ‘업무 땡땡이’를 잊지 못한다. 나는 해마다 선생님들 생일이 돌아오면 작은 선물과 편지를 전해주는데, 그해 후조 샘 생일에 이런 시를 적어 축하해드렸다.
‘(…) 이런 잘못 저런 허물/ 토닥토닥 다독이며/ 살뜰히 살아보자 웃음 짓는 그 모습/ 운동장 앞 가득 핀/ 수수꽃 아짐일세// 사람 챙겨 밥 먹이고,/ 마음 챙겨 아이들 키우랴/ 나이 먹는 일도 영영 잊으신/ 제천간디의 서늘한 오지랖// 우리 누이/ 후조 샘’
왼쪽부터 박후조 선생님과 이병곤 제천간디학교 교장. 박후조 제공
인류학자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긴 외국 생활을 떠올렸다. 그곳 사람들은 내게 자리는 내어주었으나 환대하지는 않았다. 이와 달리 환대하는 것 같으나 끝내 자리는 내어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런던은 내게 ‘친절하게 무덤덤’했다. 신기한 일은 환대해주던 사람이 별로 없던, 런던이라는 회색 도시가 내 심연에 깊이 침투하여 정서의 밑바탕을 이뤘다는 점이다. 같은 장소에서 오래 거주하는 일은 사람을 천천히 빚어내는 속성을 지닌다.
후조 샘 부부는 삶의 전환점이 생겨 우리 공동체를 홀연히 떠나야 했다. 5년6개월 전이었다. 두분을 위해 열린 소박한 이별 모임에는 침울한 기운이 가득했다. 나는 송별사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져 제대로 발음조차 못 한 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두분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식사당번~ 식사당번~’ 하고 외치는 후조 샘의 낭랑한 목소리를 교장실 앞 복도에서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굴착기를 움직여서 젖은 땅 고르고, 빗물에 무너져 내린 언덕길 보살필 손길이 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가득 부식 재료를 싣고 식당 옆 언덕길을 ‘빵빵’거리며 올라오는 3805 스타렉스의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 세상 모든 포유류 가운데 가장 슬픈 목소리를 들려주던 경수 샘의 아름다운 바리톤 음색을 덕산면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왼쪽부터 이병곤 제천간디학교 교장, 김경수 선생님. 박후조 제공
‘장소’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과 다르다. 우리가 지각하고, 상상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서 복잡한 의미망이 중층으로 겹쳐 있다. 누구나 자신이 살았던 특별한 때의 특정한 장소가 기억 속에 강렬하게 저장되어 있을 거다. 그러한 장소 경험이 장소 애착으로 발전하며, 공유하는 목적이 있는 특정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낀다. ‘장소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2020년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구별 평균 거주 기간은 7.6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 열번 정도 이사하는 셈이니 과연 우리에게 장소 정체성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까네, 간디공동체에서 일할 때가 제일로 보람되고 행복했어요. 바깥세상에서는요, 생업은 유지할 수는 있어도 사람 사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후조 샘이 전하던 이 말씀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읍이나 면 단위 마을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경수 샘 부부의 삶에서 귀한 단서를 얻어야 한다. 강렬한 장소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장소’에서 ‘사람’을 조건 없이 ‘환대’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담아 며칠 전 열린 졸업식에서 축사 끝자락에 이런 말을 전했다.
“그때쯤이면 너희는 알게 될 거야, 덕산면을 가로질러 흐르던 작은 개울 성천이, 생활관에서 바라보던 서쪽 하늘 은하수가, 어찌하여 한사코 너희들 꿈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고, 또 나타나는지, 그때쯤이라면, 그때라면, 너희는 알게 될 거야.”
용기 내어 다시 돌아오신 경수 샘, 후조 샘을 격렬하게 환영한다.
특정한 장소에서의 경험이 자아를 빚어간다. 이병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