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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브로커와 매관매직

등록 2023-12-10 18:29수정 2023-12-11 02:42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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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박수지 | 이슈팀장

“나 청와대 실장인데….”

2021년 말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사람이 서울경찰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 서울 시내 경찰서 과장(경정)을 콕 집어 총경 승진 명단에 포함해달라고 말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최관호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곧바로 수사를 지시했고, 이듬해 4월께 언론 보도로 외부에도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브로커는 청와대와 관련 없는 인물로 대포폰으로 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경정은 그해 승진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담한 사칭은 싱겁게 발각됐고 해프닝처럼 지나갔다. 승진 경쟁이 워낙 치열해 벌어진 일로 여겨지면서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내부 여론도 있었다.

최근 전남경찰청 소속 간부급 5명이 승진 청탁을 위해 각각 2천만~3천만원씩 브로커를 통해 당시 전남경찰청장에게 상납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외부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2023년에도 ‘공무원 매관매직’이 실재할 수 있느냐며 믿기 어려워한다. 마침 다시 돌아온 인사의 계절, 경찰 내부에선 ‘빽’이 없다면 매관매직이라도 시도하는 게 경찰 조직의 현실인 것 같다며 씁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경찰의 승진 방식 개선이 거론된다. 경정 이하의 중간 간부 승진은 크게 ‘시험’과 ‘심사’ 승진으로 나뉜다. 시험은 공정하다고 여겨지지만, 근무 시간에 시험에 매달린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고 실제 업무 능력과 얼마나 직결되느냐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에 현재 50%인 심사승진 비율을 경찰은 2026년엔 70%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사승진은 사실상 시도경찰청장이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 브로커 사건에서 보듯 청탁에 취약한 구조다. 이번 기회에 승진심사위원회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승진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것과 별개로, 경찰 조직 구조의 한계도 꾸준히 지적된다. 경찰 조직은 흔히 ‘압정형 구조’라고 불린다. 상위 직급일수록 압정의 핀처럼 자리가 적고, 하위 직급은 반대다. 일선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총경은 전체 경찰 계급 11개 중 치안총감-치안정감-치안감-경무관에 이은 5번째 계급이지만, 인원수로 따지면 상위 0.5%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승진 경쟁에 기름을 붓는 마지막 단계는 경정 이상부터 계급별 정년을 두는 엄격한 ‘계급 정년’이다. 각각 경정 14년, 총경 11년, 경무관 6년, 치안감 4년이다. 계급 정년 내에 승진하지 못하면, 정년(만 60살) 이전에 옷을 벗어야 한다. 한 총경급 경찰관은 “한참 애들이 클 때인데 총경이 되지 못하면, 50대 초반에도 옷을 벗어야 하기 때문에 승진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압정형 구조와 계급 정년에 대한 변화가 없다면 ‘바늘 같은 승진의 문’ 앞에서 모든 자원을 동원하려는 움직임은 애초 근절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10년 당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외부 인사를 통해 자신에게 인사청탁을 한 경찰 16명의 명단을 참모회의 석상에서 공개할 정도로 경찰 내 인사청탁은 해묵은 문제다. 정치권 입김에도 취약해 인사 시즌이면 이리저리 학연과 지연, 근무연 등을 총동원해 ‘줄 대러’ 간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사실 이를 비밀로 여기지 않는다는 분위기 자체가 더 문제다.

최근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반복되는 경찰 인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앞서 거론한 문제 외에도 “조직 생활에서 승진이 전부가 아닌, 직무 전문성을 키워서 일하면 충분히 자부심 있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당장 업무 성과를 내기 위해 ‘특진’부터 내거는 경찰 조직 문화에서 아득히 먼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2023년에 매관매직을 하는 조직이라는 수모를 견딜 순 없지 않은가. 당장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바꿔봐야 할 때다.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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