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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건희 명품 선물 보도와 함정 취재의 한계

등록 2023-12-06 07:00수정 2023-12-06 09:04

서울의소리는 지난달 2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는 내용의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의소리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서울의소리는 지난달 27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최재영 목사가 김건희 여사에게 고가의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는 내용의 의혹을 제기했다. 서울의소리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세상읽기] 김준일│뉴스톱 대표

2014년 9월 브룩스 뉴마크 영국 내각부 시민사회담당 차관이 성 스캔들로 사임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자신에게 접근한 ‘소피’란 이름의 젊은 여성에게 본인의 잠옷 사진을 보내며 여성의 다른 사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소피’라는 여성은 실재하지 않았다. ‘선데이 미러’에 기고한 남성 프리랜서 기자는 20대 여성의 사진을 도용해 수개월에 걸쳐 온라인에서 최소 6명의 보수당 의원들에게 접근했다. 다섯 자녀를 둔 뉴마크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며 차관직에서 사임했다.

2011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편경쟁부문 관객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에서 제작진은 방송사가 소개한 맛집을 다니며 뒷돈 거래를 폭로한다. 더 나아가 제작진이 음식점을 직접 차렸다. 홍보대행사에 1000만원을 건네고 지상파 방송에서 맛집으로 소개되는 과정을 폭로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2021년 8월 뉴스타파는 가짜 체리회사를 차렸다. 대행사에 660만원을 지급했고 지상파 건강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과정을 보도했다.

최근 유튜브 기반 인터넷신문 서울의소리가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보도를 하며 함정 취재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9월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는 자비로 산 300만원짜리 명품가방을 재미동포인 최재영 목사에게 제공했다. 최 목사는 이 가방을 김건희 여사에게 직접 선물했다. 최 목사는 손목시계에 달린 카메라로 이 과정을 몰래 촬영했다.

일반적으로 함정 취재는 비윤리적인 (동의 없는 녹음이나 몰래카메라 같은) 취재 기법 혹은 취재 대상의 일탈, 불법을 유발하는 취재 방식을 모두 일컫는다. 앞에 소개한 사례는 취재 대상의 비윤리적 행동을 유도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김건희 여사 보도’와 유사하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4조는 “우리는 취재 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에는 “회원은 정보를 취득함에 있어서 위계나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위에 소개된 사례는 넓은 의미의 함정 취재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모든 함정 취재가 윤리적으로 비난받아야 할까. 외국에서 언더커버 리포트는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필자는 영국의 ‘선데이 미러’ 보도와 ‘트루맛쇼’ 및 ‘뉴스타파 체리 판매’ 보도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데이 미러’ 보도에선 기자가 불특정 정치인에게 오랜 기간 ‘작업’을 했고 우연히 한 정치인이 걸려들었다. 폭로 대상이 된 정치인의 비윤리성을 기자가 사전에 인지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트루맛쇼’와 ‘뉴스타파 체리 판매’ 보도 사례에선 제작진이 취재 대상인 방송계의 잘못된 관행을 사전에 숙지했고 가장 극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함정 취재라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면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보도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서울의소리 쪽은 지난해 6월과 9월 두차례 직접 구매한 명품 선물을 제공했는데 6월 면담에서 인사 전횡 가능성을 목격하고 9월에 몰카 취재를 했다고 밝혔다. 또 사전에 메신저를 이용해 김건희 여사 쪽에 선물 제공 의사를 타진했는데 김 여사가 명품 선물에만 반응했다고 주장한다. 공익적 차원에서 용인될 함정 취재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불가피성이나 고의성을 볼 때 서울의소리 취재 방식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언론의 기본적인 윤리 기준은 공익성과 사실성”이라며 “이번 보도는 만들어낸 사실이라는 측면에서 취재라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화방송(MBC) 라디오 ‘시선집중’의 김종배 진행자는 ‘독수독과’론을 내세우며 취재 형식과 보도 내용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의소리 취재 방식이 앞에 소개한 사례와 비교할 때 어느 쪽에 가까운지 독자들이 판단해볼 문제다.

다만 “그들에게 준 취재의 특권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의 주장이나 “함정 취재 관련자들을 즉각 수사해야 한다”는 공정언론국민연대의 주장은 매우 우려스럽다. 필자는 조선일보가 심각한 오보, 혹은 취재윤리에 어긋나는 보도를 하더라도 비판할 뿐이지 취재를 제한하거나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언론의 자유는 소중하다.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함정 취재 역시 국민이 판단하도록 맡기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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