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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신캥거루, 리터루, 중년캥거루

등록 2023-12-03 15:43수정 2023-12-04 02:39

김재욱 화백.
김재욱 화백.

캥거루족이란 말은 청년실업이 심각했던 1998년 당시 프랑스 시사주간 ‘렉스프레스’가 20대의 80%가 부모에게 얹혀산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이도 저도 아닌 세대라는 의미로 ‘트윅스터’(Twixter)라는 이름을 붙인 뒤 캥거루 청년들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캥거루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캥거루족은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으로 올라 있다.

캥거루는 갓 태어난 새끼를 아기 주머니(육아낭)에서 키우는 유대류에 속한다. 태반이 없거나 불완전해서 자궁에서 새끼를 오래 키울 수가 없다. 새끼들은 자궁에서 어미가 핥아 낸 길을 따라 주머니로 이동한 뒤, 6~12개월을 함께 지내다가 독립한다. 캥거루 기대수명이 12~18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어린 시절만 어미 뱃속에서 지낸다.

동물과 달리, 인간 캥거루는 어리지 않다. 부모 집에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캥거루라는 말 앞에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취업을 한 이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신캥거루족, 독립했다가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온 리터루족이 대표적이다.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고 주거비 부담이 높아질수록 나이 든 캥거루족은 많아진다. 앞서 일본 사회는 35~44살 중년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이들을 ‘기생 독신’(parasite single)으로 불렀다. 이탈리아에선 70대 엄마가 자신에게 얹혀사는 40대 아들을 내보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분쟁으로 치닫기도 했다.

최근 통계청이 낸 ‘우리나라 청년세대 변화(2000~2020)’를 보면, 2020년 기준 부모와 사는 청년(19~34살)은 532만1000명에 달한다. 19~24살이 45.7%로 가장 많지만 25~29살(35.0%), 30~34살(19.4%) 비중도 적지 않다. 청년인구 가운데 캥거루 비중은 2000년만 해도 46.2%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55.3%로 높아졌다. 높은 미혼 비중(2020년 81.5%)도 캥거루족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30~34살 미혼 비중은 2000년 18.7%에서 2020년 56.3%로 뛰었다. 정부가 정책 대상으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집단은 구직 활동도 없이 그냥 쉬고 있는 캥거루족일 것이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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