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신현수 |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지난 10월 세주 연달아 충남 공주를 다녀왔다. 둘째 주에 내가 다닌 대학의 학보사 기자동문회가 있었다. 조동길 작가를 비롯한 선배들과 함께 유유히 흘러가는 금강을 내려다보며, 깊어가는 가을 공산성을 걸었다. 추억은 힘이 세서 40년 넘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를 금세 과거로 되돌려 놓았다.
셋째 주에는 이틀 동안 대학 동기 모임이 있었다. 친구 김홍정 작가의 안내로 황새바위 등 공주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신입생 환영회를 했던 부흥루에서 45년 만에 조재훈 스승님을 다시 모시고 밥 먹고 얘기를 나누니 감개무량했다. 명색이 공주를 ‘제2의 고향’이라고 자부하면서 정작 공주가 ‘유네스코 문화도시’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넷째 주에는 후배 시인 류지남 시비 제막식이 연미산자연미술공원에서 열려 다녀왔다. 세상 떠난 지 만 삼년도 안 돼, 마치 시비가 세워지기를 기다린 듯한 공원 초입에 시비가 들어선 건, 공주의 김홍정 작가와 양진모 시인 등 선후배 문인들이 애쓴 덕분이지만, 무엇보다도 죽기 전까지 평생을 남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류지남 시인 스스로가 살아생전 쌓아 놓은 공덕의 결과였다.
11월에는 충남 보령에서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이 대천여중에서, 내가 대천여고에서 가르쳤던 제자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보령은 첫 발령을 받아 교사 생활을 처음 시작한 또 다른 ‘제2의 고향’이다. 장항선 차창 밖으로 펼쳐진, 추수 끝낸 논 위의 곤포사일리지는 거대한 마시멜로 같기도 하고, 공룡알 같기도 한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이었다. 제자들은 어느덧 50대 중반 아줌마들이 됐고, 밤새 제자들과 나눈 수다 속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 여성들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었다.
다나카 데루미가 쓴 ‘인구의 진화–지역소멸을 극복하는 관계인구 만들기’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이제까지는 지역을 건강하게 만들려면 지역 ‘정주’인구를 늘리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교류’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 전체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지역끼리 인구 유입만 경쟁하면 결국 어떤 곳이 늘면 어떤 곳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너무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 꼭 그 지역에 살지 않더라도 지역을 응원하며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면 지역은 건강해질 수 있다. 이렇게 지역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로 ‘관계 인구’다.”
‘관계 인구’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도호쿠 먹는 통신’ 다카하시 히로유키 편집장이다. 그는 말한다. “많은 지자체가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애쓰지만, 여전히 관광이나 정주 촉진만 신경 쓴다. 나는 항상 그 틈새를 공략하라고 주장한다. 관광도 아니고 정주도 아닌 인구 층이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필요성을 확대하라는 것이다. 이는 ‘교류 인구’와 ‘정주 인구’ 사이에 잠들어 있는 ‘관계 인구’를 꺼내는 것이다. 전체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극적으로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러나 관계 인구는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충남 공주와 보령은 인천에서 살고 있는 내가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하는 곳이다. 공주는 청년 시절 몸과 마음을 성장시켜준 곳이고, 보령은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곳이다. 공주에는 대학 친구들과 나를 가르친 스승님이 살고 있고, 이름도 아름다운 보령에는 여전히 많은 제자들이 살고 있다.
당장 공주나 보령으로 이주할 계획은 없지만, 죽기 전까지 사랑하며 계속 드나들 것이다. 공주와 보령의 인구는 두곳 모두 10만명 내외다. 나는 다카하시 편집장이 말한 ‘관계 인구’인가? ‘정주’와 ‘관광’ 사이 그 어디쯤 지역소멸 극복의 해답 중 하나가 들어있을까?